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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치매와 문맹, 그 슬픈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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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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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주말마다 요양원에 계신 팔순 어머니를 뵈러 간다. 3년 전부터 치매를 앓으셨다. 집에서 두 해 모셨으나 가족들이 힘들어했다. 결국 ‘심리적 이별’을 했다. 친구에겐 비밀이 있다. 교육을 받지 못한 그 세대 어른들처럼 어머니도 까막눈이었다. “젊으셨을 때 글자를 가르쳐 드릴걸….” 회한이 몰려왔다.

친구의 마음을 아리게 한 건 문맹(文盲)과 치매가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김기웅 교수팀이 ‘알츠하이머병 저널’에 발표한 내용이다. 치매 환자 6000명의 문자 해독 능력과 질병 여부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 봤더니 16%가 문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문해력(文解力)이 높은 사람일수록 인지 능력과 기억력 감퇴 속도가 느려져 문맹자들보다 치매 발병률이 낮다는 게 의학계 정설이다. 그런데 실제 문맹의 치매 기여 위험도를 국내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친구는 글을 몰라 답답해하던 어머니도 그중 한 분일 거라고 자책한다.

의학계는 치매 환자의 3대 특징으로 저학력·문맹·고령을 꼽는다. 1940~70년대까지는 그런 현상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국민의 문맹률이 최고 78%(1945년)였던 적도 있지만 수명이 짧아 치매가 오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이 70세를 넘어선 80년대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상가에선 “노망들기 전에 잘 가셨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100세 시대로 가는 지금, 그런 말은 불경(不敬)이다.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현재 72만5000명인데 2024년에는 100만 명, 2041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선다. 치매가 초고령사회의 적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흘 전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치매 국가책임제’를 약속했다. 현재 20%인 치료비의 본인 부담률을 10%로 낮추고, 치매지원센터를 늘리며, 환자에게 전문요양사를 파견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데 예방책이 미흡하다. 치료도 치료지만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덜려면 예방도 중요하다. 우선 해 볼 만한 게 문맹과 치매의 슬픈 동거를 끊어 내는 일이다. 정부는 초·중학교 의무교육 덕에 문맹이 사실상 추방됐다며 실태 조사도 않는다.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였던 60~70대들은 평생 슬픈 비밀을 안고 산다. 그럴 일이 아니다. 문맹자가 치매에 더 쉽게 노출된다니 대책이 필요하다. 문자 교육을 통해 허기진 뇌를 자극해 주자. 중장년일수록 예방효과가 좋다고 한다. 늦깎이로 ‘가나다라’를 배우는 분들, 존경스럽지 않을까. 치매가 얼씬도 못할 것 같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