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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높았던 오바마, 의회 소통엔 실패, 상·하원 설득해 개혁 이룬 존슨 배워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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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05면

오바마 닮은꼴 ‘문바마’

청와대 사진기자단(왼쪽), 백악관 홈페이지(오른쪽)

청와대 사진기자단(왼쪽), 백악관 홈페이지(오른쪽)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초강세다. 지난 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84%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록도 갈아치웠다. 역대 최고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83%(1993년 6월과 9월)였다.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과 공직자윤리법 개정 등 집권 초기 개혁 과제를 잇따라 추진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직접 발표, 간결한 메시지, 소탈 행보 #‘레토릭 프라이밍’ 국민 소통 전략에 #“답답했던 고구마서 사이다로 변신” #오바마도 높은 지지율 유지했지만 #총기 규제 등 법안 통과는 못시켜 #존슨은 차별 없는 복지 정책 관철

문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국회 통과가 대표적이다. 대선후보 시절 밝힌 고위 공직자 5대 비리 연루자 배제 원칙에 해당하는 위장전입에 이 총리가 걸렸지만 새로운 인사 원칙을 들고 나오며 밀어붙였다. “사안마다 발생 시기와 의도, 구체적인 사정, 비난 가능성이 모두 다른데 어떤 경우든 예외 없이 배제한다는 원칙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당 의원과 국민들께 양해를 당부드린다.”(지난달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당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5대 원칙에 저촉되는 경우라도 역량이 뛰어나면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59.8%로 절반을 넘었다. 여론이 문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전임자 소통 실패 따른 반사이익” 분석도

고공 지지율은 권위주의를 깬 소탈한 행보에서 시작한다. 반려묘 찡찡이의 배설물을 직접 치우고 청와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메밀국수 점심을 함께 먹는 모습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인을 받으려고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장면은 낯설기까지 하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취임 3주를 놓고 봤을 때 감성적이고 표면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선 역대 대통령 중 문 대통령이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대선 기간 표출된 국민들의 소통 욕구를 문 대통령이 만족시켜주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탓에 그에 따른 반사이익도 누리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식당에서 음식을 담고 있다(오른쪽). 백악관 홈페이지(왼쪽), 청와대 사진기자단(오른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 식당에서 셰프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왼쪽). 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식당에서 음식을 담고 있다(오른쪽). 백악관 홈페이지(왼쪽), 청와대 사진기자단(오른쪽)

문 대통령의 행보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데칼코마니(어떤 무늬를 종이에 찍어 다른 표면에 옮겨 붙이는 기법)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중요한 인선을 발표할 때마다 청와대 춘추관 마이크 앞에 섰다. 새 정부 첫 인선인 국무총리 후보자와 국정원장 후보자,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직접 발표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새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첫 임기 시작 직전인 2008년 12월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하는 인선안을 직접 발표했다. 연방대법관 후보자를 발표할 때도 후보자와 함께 마이크 앞에 섰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3일 “한국인들이 문 대통령을 오바마 전 대통령에 빗대 ‘문바마(Moon-bama)’라 부르며 반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팬덤 현상으로 폭발하는 것도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지난 1일 들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커피전문점 클럽에스프레소에는 ‘문 블렌드’ 원두를 전시하는 판매대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대학생 최수정(25)씨는 “문 대통령이 즐기던 원두를 맛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기자들과의 북악산 등산 때 입었던 등산복은 시장에서 사라졌다가 ‘문재인 등산복’이라 불리며 최근 재출시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와이 휴가 때마다 꼭 들렀다는 셰이브 아이스 가게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것과 닮았다.

간결한 메시지를 통해 지지 세력을 넓히는 전략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발사대 4기가 비공개로 추가 반입된 것에 대한 보고가 누락된 데 대해 “충격적”이라고 표현했다. 노사정 대화의 사측 대표격인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비정규직 대책에 이견을 내자 “성찰과 반성이 먼저”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한 교수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감정을 섞어 전달하는 등 대중에 초점을 맞춘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연설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연설을 통한 어젠다 설정은 특정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막강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게다가 대통령이 강조한 이슈가 시민들이 생각하는 현안과 일치할 경우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증가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치학에선 이를 ‘레토릭 프라이밍(Rhetoric Priming)’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인천공항을 찾은 자리에서 비정규직 해소를 언급하고 초등학교를 방문해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지난 대선은 ‘먼지 대선’이라 불릴 만큼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치매 국가책임제를 꺼낸 것도 이런 이유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커피를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왼쪽).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커피를 들고참모들과 산책하고 있다(오른쪽). 청와대 사진기자단(왼쪽), 백악관 홈페이지(오른쪽)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커피를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왼쪽).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커피를 들고참모들과 산책하고 있다(오른쪽). 청와대 사진기자단(왼쪽), 백악관 홈페이지(오른쪽)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일 뿐”이라며 “전임 대통령 때와 비교돼 상대적으로 크게 돋보이는 것이지 결코 전략적 행보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행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청문회 정국 등 향후 고비를 맞을 때마다 문 대통령의 레토릭 프라이밍 행보가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 “후보 시절 고구마 같이 답답해 보였던 문 대통령이 사이다로 변신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레토릭 프라이밍 효과 때문이란 분석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레토릭을 지속적으로 구사하면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월 퇴임사에서도 “여러분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지지율 5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전화기 붙잡고 의회 설득한 린든 존슨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 전화 정치로 의회 설득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 전화 정치로 의회 설득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의 레토릭 프라이밍은 지지율과도 관련이 깊다. 박영환 정치학 박사는 2013년 발표한 ‘대통령의 레토릭과 한국 대통령의 지지도’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95차례 라디오 연설과 주요 이슈 및 지지율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경제 이슈를 강조하고 대국민 설득에 나설 때 지지율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대통령이 특정 이슈를 강조하고 국민의 중요성 인식이 뒤따를 때 대통령 지지도가 상승하곤 했다”고 분석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와 아덴만호 구출작전 성공도 이런 사례 중 하나다.

찬반 양론이 뚜렷한 사드 정국에서도 문 대통령의 레토릭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전망이다. 안보와 북한 문제, 미·중 관계 등 복잡 다양한 의제가 포함된 현안인 만큼 레토릭 프라이밍 효과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레토릭을 구사해 왔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하고 다시 찾아 뵙겠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한 교수는 “문 대통령의 발언 형태와 순서에 따라 사드 정국도 유동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오바마 모델만으론 문 대통령의 성공을 담보할 순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선 성공했지만 의회와의 소통에선 성공적이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총기 규제 법안이다.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 훅 초등학교에선 총기 사고로 초등학생 20명과 교사 6명이 사망했다. 이후 반자동 소총 등 공격용 무기 거래 금지와 10발 이상 대용량 탄창 거래 금지 등 규제 법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법안은 상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의원 100명 중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투표에 들어가는데 어느 법안도 이 벽을 넘지 못했다. 결과는 54대 46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에서도 이탈 표가 5표나 나왔다. 결과적으로 미국인의 90%가 찬성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다.

서 교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화만 돌렸더라도 규제 법안 중 일부는 통과됐을 것이란 미국 언론의 비판이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총기규제법이 부결되자 뉴욕타임스는 1면에서 “대통령은 어디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이후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열린 총기 난사 희생자 추도식에서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선창했고 6000여 명의 추도객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박수를 쳤다. 이는 국민의 높은 지지가 꼭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 사례로 꼽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퇴임 소감에서 “보다 강력한 총기 규제를 통과시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와 반대로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은 국민 설득에는 실패했지만 제도 개혁엔 성공한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출신인 그는 ‘전화기 대통령’으로 불렸다. 차별 없는 복지제도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존슨 전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끊임없이 의회를 설득했다. 대표적인 의료 보장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와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가 그의 작품이다. 연방정부 비용으로 지은 뒤 저소득자에게 제공되는 공영주택도 그가 남긴 업적 중 하나다.

그럼에도 베트남전 참전에선 국민 설득에 실패했다. 존슨 전 대통령은 1968년 베트남전 패전에 따른 인기 하락으로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 교수는 “국민적 지지를 업고 제도 개선까지 이뤄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우선순위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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