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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검찰 충격요법 … 대통령의 ‘심기’ 내세운 개혁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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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재인 청와대가 각 분야에서 ‘충격 요법’식 국정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개혁 과제를 부각시켜 추진 동력을 모은 뒤 그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돈봉투 만찬 계기 검찰 물갈이 압박 #사드 보고 누락, 군기 잡기 지렛대로 #4대 강 정책감사, 경총 경고장 등 #임기 초반 핵심과제 속도 내기 분석 #“대통령이 나서면 건전 비판 사라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주한미군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발사대 4기를 비공개로 국내에 반입한 것을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매우 충격적”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공개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이를 두고 “청와대가 사드 문제를 발판으로 국방 개혁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방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9년간 승진해 군 수뇌부가 된 인사들을 교체하는 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보고 누락’ 문제를 청와대 국가안보실뿐 아니라 민정수석실까지 나서 조사를 하다 보면 일정 부분 감찰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물갈이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역시 이번 문제를 군기 잡기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비슷한 방식은 지난달 1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핵심 국정과제와 결부돼 계속 나타나고 있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가 고강도 감찰을 지시하고, 지난달 19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파격 발탁해 검찰 수뇌부를 진공 사태로 만든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26일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 이견을 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향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총도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중 한 축으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4대 강 사업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정책감사를 실시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4대 강 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갈등을 빚을 게 뻔한 사안이다.

청와대가 충격 요법을 동원하는 데엔 “임기 초반 핵심 국정과제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과 회의를 할 때 “국정과제의 방향을 잘 잡아야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취지로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신정부의 국정 환경과 국정운영 방향’ 보고서에도 “초기에 특정 개혁과제를 집중 추진해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임기 초반 각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인사 참사 등으로 국정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던 것도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공직사회, 최고 인사권자 입만 바라보게 돼

하지만 새 정부 초반 대통령이 감정을 직접 드러내거나 참모들이 대통령의 ‘심기’를 개혁 추진의 지렛대로 삼는 건 “참신하지 않은 틀에 박힌 방식”이란 지적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013년 1월 박선규 당시 당선인 대변인이 나서 “당선인이 제시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정부 부처가 언론을 통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 당선인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한 게 그런 예다. 최고 인사권자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 공직사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당연히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참모들에게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기하는 건 의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에 이견을 보인 경총을 향해 문 대통령이 직접 경고에 나서자 정치권과 재계에선 “반대 의견을 듣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드 ‘보고 누락’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데 대해서도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은 최종 결정자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일단 말하고 나면 누가 대통령에게 이렇게 저렇게 말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꼬집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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