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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안 짓고도 자진해 감옥살이 … “갇힌 공간서 자유를 느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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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죄를 짓지 않고도 스스로 ‘독방 감옥행’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사단법인 행복공장이 마련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릴레이 성찰 프로젝트 참가자들이다. 행복공장은 지난 3월부터 지난 28일까지 주말마다 1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에서 ‘독방 24시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 두 달간 200여 명이 스스로 독방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작은 독방 28개가 있다.

홍천군 ‘독방 24시간’ 프로그램 체험 #5㎡ 독방 적응되자 마음 평온해져 #휴대전화 등 방해 없이 사색 잠겨 #참가 고교생들 편안한 표정 ‘출소’ #“삶을 반성하고 미래 계획한 시간 #감옥의 국정농단 책임자도 자성을”

감옥 안을 들여다보는 참가자. [박진호 기자]

감옥 안을 들여다보는 참가자. [박진호 기자]

행복공장 권용석(54) 이사장은 29일 독방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바깥을 보느라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면 본인은 물론 주변과 사회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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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11시 행복공장 홍천수련원. ‘내 안에 감옥’이라고 쓰인 건물 주변에서 수의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색 옷을 입은 10대 청소년 3명이 산책하고 있었다. 이들은 인천 대건고 3학년 학생들로 가슴엔 이름과 번호가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다. 명찰에 적힌 번호가 뭐냐고 묻자 한 학생이 “앞으로 수감될 독방 번호”라고 했다.

문이 열리자 독방을 나오는 참가자. [박진호 기자]

문이 열리자 독방을 나오는 참가자. [박진호 기자]

체험에 참여한 대건고 학생들은 3학년 12명, 2학년 8명, 1학년 5명 등 모두 25명이었다. 여기에 교사 한 명도 동행했다. 이강재 (58) 교사는 “제자들에게 참는 법과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참가했다”고 말했다.

수련원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참여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3학년 노병재(18)군은 “대학 진학 등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새 출발 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자기소개를 끝낸 학생들은 독방 안에서 하게 될 명상 방법 등을 배웠다. 이들은 낮 12시에 점심을 먹었다. ‘감옥’ 밖에서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식사다.

한 참가자가 독방에 앉아 창 밖을 보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한 참가자가 독방에 앉아 창 밖을 보고 있다.[박진호 기자]

오후 1시45분. ‘댕~댕~’ 하는 종소리가 울리자 참가자 모두 5㎡ 남짓한 독방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도 체험을 위해 307호 독방에 들어갔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자 답답함이 느껴졌다. 방이 어둡지는 않았다. 독방 안에는 노트와 필기도구, 색연필과 녹차가 있었다. 전자기기나 책 등 개인 물품은 일절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휴대전화가 사라지자 처음엔 마음이 불안했다. 쉴새없이 울리던 메신저와 전화벨 소리가 없는 독방 안은 고요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어느새 불안했던 마음이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오후 6시. 가로 40㎝, 세로 30㎝ 크기의 배식구가 열리고 바나나와 아몬드를 갈아 넣은 셰이크, 고구마·빵이 들어왔다. 허기 정도만 달랠 수 있는 양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밤 늦게 잠들 때까지 노트에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가장 행복했거나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썼다. 명상도 했다.

독방 들어가기 전에 먹는 점심. [박진호 기자]

독방 들어가기 전에 먹는 점심.[박진호 기자]

다음날 오전 6시.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끝난 뒤엔 108배를 인도하는 방송이 40분간 이어졌다.

9시45분.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나온 참가자들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임지환(18)군은 “독방 안에서 푹 쉬고 나니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그는“독방에 들어가 보니 국정 농단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들도 그 안(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김명보(17)군은 “집중이 잘돼 그동안 잘못한 걸 반성하고 앞으로 뭘 할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10시30분. 강당에 다시 모인 참가자들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 담긴 가석방 증명서를 받고 퇴소했다.

홍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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