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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파바로티’ 된 전직 권투선수 … 성악 재능기부 하니 악성 암도 ‘KO’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희망 전도사 된 성악가 조용갑
유럽 무대 활약 중 다리에 암
소외층 등에 무료 공연·레슨
베풀기 7년 만에 병도 완치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무료로 음악 교육을 하고 있는 조용갑 성악가. 그는 “꿈과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무료로 음악 교육을 하고 있는 조용갑 성악가. 그는 “꿈과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동양의 파바로티’. 이탈리아에서 유명 성악가로 활동했던 조용갑(47)씨의 별명이다. 천생 음악인일 것 같은 그이지만 원래 직업은 권투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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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가거도에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냈다. 도시에 나가 살고 싶던 그는 중학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철공소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웠고 퇴근 후엔 야간고를 다녔다.

고교 졸업 후 배운 권투는 그의 직업이 됐고, 6년간 프로선수로 활동했 다. “남을 때리고 맞고 하는 게 천성에 맞질 않았어요. 할 줄 아는 일은 없었고 먹고 살기 위해 링에 올랐죠.”

낯선 객지에서 유일한 안식은 노래였다. 조씨는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 었지만 소리를 낼 때만큼은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처음 상경했을 때부터 성가대 활동을 했던 교회의 목사가 어느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생활비를 대줄테니 이탈리아에 가서 제대로 성악을 배워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조씨는 권투를 접고 로마에 갔다.

이탈리아에서 유일한 선생님은 파바로티의 카세트 테이프였다. 이탈리아어를 몰라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받아 적고 외웠다. 밤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했고, 돈이 모이면 레슨을 받았다.

“칭찬하는 선생님에겐 다시 찾아가지 않았어요. 레슨비를 벌려면 며칠씩 일해야 하는데 칭찬만 듣기엔 돈이 아까웠죠.” 조씨는 1년간 노력 끝에 조수미씨 등이 나온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학교인 ‘산타체실리아 음악원 ’에 합격했다.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무료로 음악 교육을 하고 있는 조용갑 성악가. 그는 “꿈과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무료로 음악 교육을 하고 있는 조용갑 성악가. 그는 “꿈과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조씨는 하루 10시간씩 4년간 성악을 연습했다. 상금을 벌 기 위해 나가기 시작한 콩쿠르에선 총 28번이나 1등을 했다. 이후 14년간 이탈리아·독일 등 유럽 무대에서 300회 이상 오페라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그러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2010년 왼쪽 다리가 썩어가기 시작했다. 피부암과 골수암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죠. 그런데 그때 한 가지 깨달음을 었었습니다. 섬마을 촌놈이 이 정도면 원 없이 행복했다. 남은 삶은 좋은 일에 써보자고 말이죠.”

그때부터 조씨는 교도소와 군부대로 무료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 사회와 격리된 곳이고 자의로는 공연을 볼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사이 그에겐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밀검사 끝에 암이 아닌 걸로 판명난 것이다.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죠. 더 열심히 봉사하고 살라는.” 이후 그의 선의는 더욱 확대됐다. 조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무료 레슨을 하고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조용갑성악스쿨을 세운 그는 최근 라펠리체 홀을 만들어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나섰다.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어 음악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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