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수원시민들 "고은 시인 나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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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상광교동 일부 주민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는 고은(84·) 시인에게 수원 광교산을 떠나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3일 수원시 등에 따르면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 소속 광교산 일대 주민들은 지난 21일 장안구 상광교동에 사는 고 시인의 주거지 주변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시민의 공간에 무상으로 거주하는 고은 시인은 당장 광교산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47년간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법 등 이중 규제 때문에 주민들은 주택 개·보수조차 마음대로 못하는데 시를 쓰는 문인에게 (수원시가)조례까지 만들어 시민의 혈세를 쏟아 붓는 의도에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이문형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 위원장은 "주민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수원시가 이행강제금을 물리며 단속하면서 고은 시인에게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어 주민들은 분통이 터진다"며 "수원시가 고 시인에게 주는 특혜에 대해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성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고 시인은 수원시가 인문도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삼고초려해 2013년 8월 19일 지금의 상광교동으로 이사했다.

 수원시는 민간인으로부터 사들인 광교산 자락의 주택을 리모델링해 고 시인이 살도록 배려했다.

 광교산 일부 주민들은 수원시가 주민 혈세로 주택 리모델링을 위해 9억5000만원을 들였고 최근 4년간 매년 1000만원이 넘는 전기료와 상하수도 요금을 내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또 광교산 곳곳에 고 시인의 퇴거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최근 내걸었고 앞으로 한 달간 집회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원시와 수원지역 문화계는 고 시인이 일부 주민의 퇴거 주장에 상처를 입고 수원을 떠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의 인문학적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분이어서 고 시인을 어렵게 모셔왔고 시 보유 자산에 거주하니 시설 유지관리도 시가 지원하는 것"이라면서 "고 시인은 수원시민을 위해 시를 많이 쓰고 강의도 하면서 상당히 기여하고 있는 만큼 이런 일로 수원을 떠나는 일이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가 광교정수장 해제 문제를 놓고 수원시와 갈등 관계에 있어 고 시인을 이용해 시를 공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수원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주택 신·증축과 생계를 위한 음식점 영업에 제한을 받아온 광교 주민들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광교 정수장 폐쇄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수원시에 요구하고 있다.

수원지역 문화계와 학계 인사들은 광교산 일부 주민들의 시위로 인해 고 시인이 수원시를 떠나지 않도록 주민 설득과 소통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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