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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항구에 몇 달 세워놓은 벤틀리, 슬쩍 끼워파는 폴크스바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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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윤정민 산업부 기자

윤정민산업부 기자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이달 판매를 재개한 벤틀리 차량 중 일부는 평택항 PDI(출고 전 차량 점검) 센터에서 보관하던 차량이라고 22일 밝혔다.

온라인서 ‘평택항 에디션’으로 화제 #부품 부식 등 품질 논란 불거졌는데 #신규 제작된 차량과 같은 값에 판매 #폴크스바겐 “커버 씌워 실내 보관”

판매 중인 벤틀리 차종은 지난 3월 신규 인증을 받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벤테이가’(3억4500만원)와 소음 성적 서류 조작으로 인증이 취소됐다가 지난달 재인증받은 ‘플라잉 스퍼 V8’(2억5000만원 이상) 등 4종이다. 재인증받은 차종 중 일부 물량이 평택항에 보관돼 있던 재고이다. 지난해 7월부터 있던 차량도 있고, 그 후에 들어온 차량도 있어 보관 기간은 차량마다 다르다.

벤틀리 측 관계자는 “정확히 몇 대가 얼마 동안 보관돼 있었는지는 확인이 어렵지만 총 50~60대의 재고가 센터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벤틀리의 한국 판매량은 170대였다. 지난해 인증 서류 위조 등으로 폴크스바겐의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이후 평택항 PDI 센터에 보관된 2만여 대의 차량은 ‘평택항 에디션’이라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회사 측이 이를 한국에서 팔 경우 ‘40% 폭탄 할인도 가능하지 않겠냐’라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수개월 동안 바닷바람을 맞은 까닭에 부품 부식 등 품질을 의심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면 구매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폭탄 할인’ 소문은 자동차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점점 퍼져나갔고 심지어 폭탄 할인을 기다리며 자동차 구매를 미루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중고차 가격 폭락을 우려하는 기존 소유주들의 불만도 커졌다.

지난해 7월 판매가 정지되자 아우디폭스바겐은 재고 차량을 평택항 PDI센터에 보관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7월 판매가 정지되자 아우디폭스바겐은 재고 차량을 평택항 PDI센터에 보관했다. [중앙포토]

폴크스바겐은 판매정지 반년이 넘도록 이런 소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본사로 돌려보낼지, 혹은 재인증 받아 판매할지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평택항 PDI 센터에 묶여 있던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차량 1500여 대가 독일로 돌아갔다. 지난달 10일에도 재고로 방치됐던 티구안·골프 등 2500여 대가 독일로 반송됐다. 폴크스바겐은 “폴크스바겐 브랜드 차량은 최대한 한국 내에서 팔지 않고 독일로 돌려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 재인증을 받은 벤틀리의 경우 판매 재개와 함께 평택항에 있던 재고를 할인 없이 정상가로 판매하는 것이다. 벤틀리 관계자는 “고가 차량인 만큼 완전히 커버를 씌워 실내에 따로 보관했고, 본사 전문 인력들이 출고 기준에 맞는지 전수 조사를 한 뒤에 고객에게 인도되고 있다. 또 출고 전 고객들에게 평택항에 있던 재고임을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다시 커질 수 있다. 판매 중지 사태 이후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해 왔던 폴크스바겐이 평택항에 남은 차량을 모두 독일로 반송할 것처럼 해놓고, 벤틀리 재고는 아무런 공식 설명도 없이 새 차와 함께 정상가로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소비자로서는 내가 산 차가 언제 만들어져서 어디 보관돼 있던 건지 알기 쉽지 않다. ‘평택항 에디션 폭탄 할인’ 논란이 얼마나 큰 화제가 됐는지 폴크스바겐 스스로 잘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물론 기업에 대해 묻지도 않은 논란거리를 먼저 공개하는 친절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폴크스바겐이라면 평소보다 조금 더 친절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후 아우디나 폴크스바겐이 재인증 후 판매 재개에 나서는 과정에서도 의심을 사게 된다. 소비자들은 ‘벤틀리와 같이 공식 발표 없이 재고 차량이 새차와 함께 정가로 판매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품게 될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또한 벤틀리를 제외한 다른 차들을 완전히 독일로 돌려보내더라도 그 기준을 정확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벤틀리는 다시 한국에 팔고,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은 독일로 돌려보내는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신뢰는 잃기는 쉬워도, 다시 쌓기는 몇 배로 어려운 법이다.

윤정민 산업부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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