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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비상구가 죽음의 문이라니” 분노의 댓글 1만 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해 6월 부산시 동구에서 2층 노래방을 찾은 20대가 비상구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크게 다친 사고가 있었다. 당시 2층 벽면 출입문을 비춘 뉴스 영상을 보면서 “저거 사람 떨어지라고 만든 문 아니냐”고 혼잣말을 했다. 며칠 전 그 영상이 떠올랐다. 지인으로부터 “아는 사람이 노래방 2층에서 비상구 문을 열었다가 3m 아래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다.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의 한 건물 2층 노래방에 있는 사고 현장은 뉴스에서 봤던 ‘낭떠러지 비상구’였다. 지난달 30일 밤 화장실을 찾던 김모(58)씨가 이 비상구 문을 열었다가 3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김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나흘 만에 숨졌다.

낭떠러지 추락사 방치에 시민 분통

김씨의 부인 이모(54·여)씨는 기자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런 비상구가 존재하는 한 남편과 같은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며 “피해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분노했다. 해당 기사와 기사를 공유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친구와 길을 가다 건물 2층 벽면에 출입문이 있는 것을 보고 웬 바보가 계단도 없이 2층 벽에 출입문을 뚫어 놓았느냐며 비웃은 적이 있다”며 “저런 출입문이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모르겠다. 제발 저런 무개념 탁상행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아이디 성남****), “화재 발생 시 비상구에 사람이 몰려 엉켜 버리면 다 떨어져 죽으라는 소리인가?”(아이디 dp99****)

댓글 대부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위험한 시설을 방치한 관련 기관을 비판한 것이다.

정부는 ‘낭떠러지 비상구’ 사고가 2015년, 2016년 경기도 안산과 부산에서 연이어 발생하자 지난해 10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해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하지만 신규 업소에만 경보장치와 안전로프, 비상구 추락 방지 스티커 부착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했다. 기존 허가 업소는 의무가 아닌 권고 대상이다.

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전 문제와 관련해 법을 개정할 때 기존 업소에도 소급 적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업소의 반발을 줄이고 금전적인 타격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일정기간을 두고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정교하게 접근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숨진 김씨는 이달 초 황금연휴에 가족과 국내 여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가정의 달 가족과 생이별을 한 50대 가장의 죽음을 단순한 불행으로 넘기면 안 된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함께 나서 곳곳에 존재하는 안전 사각지대를 제거할 때다.

박진호 내셔널부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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