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의 마지막 관문 '힐러리 스텝'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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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오르는 길에 놓인 마지막 난코스 '힐러리 스텝'. 정상 직전에 있는 이 암석 노두가 붕괴돼 에베레스트 등반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1일 보도했다. 힐러리 스텝은 1953년 에베레스트에 맨 처음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을 딴 12m 구간의 수직 빙벽 구간이다.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이곳에서 힐러리를 기다렸다가 탈진한 그를 도와 함께 오른 뒤 첫 등정의 영광을 양보해 네팔인들은 이 곳을 '텐징의 등'이라고도 부른다. 90년대 이후엔 등반대가 몰려 병목 현상이 빚어지곤 한다.

영국 등반가 "등산의 전설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정상 직전의 수직 빙벽, 네팔 지진으로 붕괴

에버레스트 정상 마지막 관문인 '힐러리 스텝'이 지난 17일 눈 비탈 경사면으로 변했다.[Everest Expedition 페이스북 캡처]

에버레스트 정상 마지막 관문인 '힐러리 스텝'이 지난 17일 눈 비탈 경사면으로 변했다.[Everest Expedition 페이스북 캡처]

힐러리 스텝이 붕괴됐다는 루머는 지난해부터 돌았지만 눈폭풍 때문에 확인하기 어려웠다. 지난해 아메리칸 히말라얀 파운데이션은 '힐러리 스텝이 네팔 지진으로 붕괴되었나?'라며 2013년과 2016년을 비교한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이달 16일 여섯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영국의 산악인 팀 모스데일은 "지난해 등반 당시엔 눈폭풍 때문에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등정에선 '힐러리 스텝'이라 불리던 암석 덩어리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등산의 역사가 사라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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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등정의 난이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모스데일은 산악 전문 웹사이트 '플래닛 마운틴'에 숙련된 산악인들은 힐러리 스텝이 사라짐으로 인해 수직 암벽 등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등정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등반 경로가 제한됨으로써 병목현상이 더욱 심해져 산악인들이 오랫동안 추위에 떨며 대기해야 하고, 암석의 상태가 불안정해 오히려 위험이 커졌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네팔 정부는 올해 외국인 375명에게 에베레스트 등반 허가를 내줘 195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4년 산사태로 셰르파 16명이 한꺼번에 숨지고,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베이스캠프에서 산악인 19명이 사망한 여파로 2년간 에베레스트 등정이 중단된 바 있다. 지난해 봄, 에베레스트 등정이 재개됐지만 지진 피해 복구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아 허가 받은 인원은 289명에 그쳤다. 네팔 현지인 등반팀은 이달 정상으로 향하는 경로 정비를 마무리했고,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됐다. 올해 인원이 몰리면서 사라진 '힐러리 스텝' 구간에서의 병목 현상은 더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21일(현지시간)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3명의 산악인이 숨지고 한명은 실종됐다고 WP는 보도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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