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장' 신태용 감독의 품격 "환호는 오늘까지, 내일부턴 다시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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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 대한축구협회]

신태용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 대한축구협회]

'승장'은 품위를 지켰다. 2017 20세 이하(U-2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기니와의 개막전에서 기분 좋은 첫 승을 거둔 신태용(47)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활짝 웃지 않았다. 눈 앞의 승리보다 다음 승리와 더 높은 목표에 무게를 뒀다.

한국은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니와의 U-20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A조 첫 경기에서 전반 36분에 터진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의 선제골과 임민혁(서울), 백승호(바르셀로나B)의 추가골을 묶어 3-0으로 이겼다. 첫 경기에서 기분 좋은 완승을 거두고 승점 3점을 거머쥔 한국은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23일)과 잉글랜드와의 3차전(26일)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치를 수 있게 됐다.

신 감독은 경기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반 초반에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올 때 잘 버티며 강하게 압박한 게 주효했다"면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 속에 골 결정력까지 살아나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친 뒤 우리 선수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최대한 즐기되, 내일부터는 아르헨티나전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집중하도록 선수들을 독려할 것"이라 덧붙였다.

전반 추가시간 중 이승우와 조영욱(고려대)이 합작한 추가골이 비디오부심시스템(VAR) 판독결과 무효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 골이 인정받았다면 조영욱이 훨씬 살아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면서도 "선수들에게 득점 여부 또는 실점 여부에 대해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의 도입이) 스포츠맨십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태용 감독 일문일답. 전주=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경기를 마친 소감은.
"전반 초반부터 상대 선수들이 우리 뒷공간을 노릴 것 같아 그 부분을 선수들에게 특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흐름을 잡은 게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다. 최선을 다 한 모습에 골 결정력까지 살아나면서 승리를 거뒀다. 경기를 마친 뒤 모든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전반 종료 직전에 비디오판독시스템으로 추가골이 무효로 처리됐는데.
"경기에 앞서서 선수들에게 미리 당부를 했다. 오프사이드로 골을 넣거나 먹거나 비디오 판독이 있을 것이니 그 결과에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무효가 됐지만 선수들에 대해 스코어에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무실점으로 마친 것도 의미가 있는데.
"세네갈과의 평가전(2-2무)에서 수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는데, 기니가 지역예선에서 세트피스로 많은 골을 넣은 팀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준비를 잘 했다. 우리 선수들이 이기고 있더라도 실점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모습을 봤다. 수비 집중력을 끝까지 잃지 않은 게 무실점 승리로 이어진 것 같다."

-무효 판정을 받은 조영욱의 추가골은 비디오 판독이 없을 때는 득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인데.
"골을 넣은 줄 알고 모든 선수들과 벤치에서 환호했는데, 1cm도 안 되게 볼이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무했다. 하지만 스포츠맨십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경기 초반 기니가 강하게 밀어붙일 때 어떤 지시를 했나.
"전반 10분 정도는 우리 수비지역에 선수들이 내려와서 상대가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지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우리 수비 뒷공간을 밀고 들어오는 공격을 할 것으로 봤다. 상대가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을 타지 못하게 전방 압박을 강하게 시도한 게 먹혀들었다. 이승모가 헤딩 클리어링을 앞에서 해주면 뒤에 있는 중앙수비수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수비에 집중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상민의 수비 리딩도 좋았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 대해 어떻게 봤나.
"경기 내용은 아르헨티나가 훨씬 나았다. 전반에는 잉글랜드가 크로싱 한 방에 헤딩 한 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후반에도 아르헨티나가 개인 기량은 뛰어났는데, 9번 선수의 불필요한 동작이 퇴장으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잉글랜드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잉글랜드는 자기 지역을 잘 지키면서 신체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르헨티나는 모든 선수들이 개인 기량이 좋았다. 우리와 좋은 경기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기니전보다) 더 집중해서 경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만7500명의 관중들이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오늘 경기에 나오기 전에 이승우와 백승호에게 4만석 가까운 경기장에서 뛰어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두 선수 모두 없다고 하더라. 우리에게 팬들이 12번째 선수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팬들의 함성에 힘을 얻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 경기에 우리 팬들이 열광적인 응원을 해주면 어린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어줄 거라 생각한다. 오늘 경기를 계기로 삼아서 2017 월드컵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응원을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조영욱이 득점은 없었지만 볼키핑과 공중볼 경합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었는데.
"조영욱은 이제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선수다. 골은 없었지만 득점을 인정받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앞에서 싸워주는 모습이 더 나아지고 있고 이승우 백승호와의 콤비 플레이도 나아지고 있다. 원톱으로서 최선을 다 했다. 잘 싸워졌다."

-이승우가 경기 초반에 오버워크를 하다가 경기 중에 페이스를 찾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승우는 스스로 자신의 경기를 만들어갈 줄 아는 선수다. 다리에 쥐가 오고 부상이 있더라도 팀을 위해 보이지 않는 희생이 좋은 선수다. 근육이 올라오고 좋지 않았지만 우리 팀의 승리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줘 감사하게 생각한다."

-반성할 점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쉬운 패스미스가 몇 개 나왔다. 좀 더 세밀하게 했다면 좋았을 장면이 있었다. 과욕, 템포 조절 때문에 패스미스를 하는 부분들이 보였다. 그런 부분들이 아쉬웠다.마무리 패스와 쉬운 패스의 실수를 줄이면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이승모가 근육이 올라와서 교체됐는데. 선수들의 건강 상태는.
"근육 경련은 자고 일어나 봐야 어느 정도 컨디션이 확인된다. 아직까지 큰 부상은 없는 듯하지만 내일 오후에 훈련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경기 세트피스에 대한 평가는.
"팀마다 수비의 포인트가 달라진다. 오늘은 기니의 특성에 맞춰서 훈련했다. 아르헨티나가 스테프스를 활용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그 팀에 맞춰서 훈련하겠다. 공격적인 세트피스는 우리 선수들의 의외로 너무 단순하게 해줘서 가지고 있던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이 긴장하면서 편하게 했던 부분이 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우리가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이승우가 헤어밴드로 감춰온 메시지에 대해 알고 있었나.
"15일날 짧게 외출을 다녀와서 16일 아침에 보니 머리가 요상하게 되어 있더라.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승리의 염원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취재진에 오랫동안 감추다보니 색이 조금 바랜 것 같아 '염색을 다시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했다. 승우에게 표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하되, 그에 맞는 책임을 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만큼 경기장에서 더 보여주면 된다."

-선수들이 어젯밤에 전주시내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몇 시에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밤 10시~10시반 사이가 된다. 잠깐 산책을 하고 빠르면 12시에 잠이 든다. 선수들이 아침 먹을 때까지 푹 자고 오전에 산책하고 오후에 스스로 루틴에 맞춰서 행동하도록 장려한다. 차를 마시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자기 몸 상태에 맞춰서 마셔도 좋다."

-경기 중에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롭게 오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기니가 원톱으로 나오기 때문에 굳이 우리가 스리백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포백을 썼다. 수비를 안정적으로 하되 공격에 더 강하게 나갈 수 있게 했다. 이승모는 원볼란치로 김승우를 대신해서 뛰었다. 상대에 따라서 스리백과 포백을 유연하게 오갈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상황에 따라 활용하겠다."

-분위기를 잘 타는 연령대의 선수들인데, 긍정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이어갈 생각인가.
"오늘 경기는 오늘로 끝날 것이다. 오늘은 최대한 즐기되, 자고 일어나면 내일부터는 아르헨티나전을 준비하기 위해 선수들을 차분해지도록 짓누를 것이다. 한 경기가 끝이 아니라 발을 담근 것이고 시작이다. 오늘은 이겼으니까 누릴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누릴 수 있게 해주겠다."

-기존의 평가전과 오늘 경기를 비교한 오늘 아르헨티나의 전력은.
"지역예선보다 훨씬 강한 팀이라 느꼈다. 이름값만 아르헨티나가 아닐까 살짝 방심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지역예선 영상을 본 것보다 좋은 팀이었다."

-아르헨티나가 평균 신장이 작은 팀인데.
"내 머리 안에는 아직까지 기니에 대한 생각 뿐이다. 이제 숙소에 돌아가서 영상과 기록을 보면서 분석하고 (아르헨티나전) 전술을 짜야할 것 같다. 2번과 6번 투 스토퍼는 제공권이 상당히 좋은 선수들이었다. 그 선수들의 장단점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갈 지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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