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홈피'로 조직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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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친구들끼리 사진을 돌려보거나 안부 글을 올릴 수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싸이월드의 한 미니홈페이지. 처음 접속할 때 나오는 배경화면에 험상궂은 인상의 아바타(사이버 캐릭터)가 보인다. 방명록을 들여다보면 '죽는 날까지 형님을 모시겠습니다'와 같은 글이 가득하다. 이 미니홈피의 운영자는 조직폭력배 행동대장 박모(30)씨.

그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적발한 '신촌이대식구파' 일당 중 한 명이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3년부터 서울 신촌 일대 유흥업소에서 돈을 뜯어내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형 폭력조직이다. 교통사고 보험 사기까지 손을 댄 것으로 조사됐다.

신촌이대식구파는 인터넷을 통해 조직을 관리했다는 게 특징이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조직원이 70명에 이르는 데다 20대 신세대 조직원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각자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만든 뒤 서로 '일촌맺기'(사이버 결연)를 했다. 이후 미니홈피 방명록에 인사말을 수시로 남기거나 단합대회나 조직원 사진 등을 올렸다. 흉기로 살인하는 방법을 찍은 동영상과 '수사기관에 검거되면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등 행동강령을 올려 신입 조직원 교육용으로 활용했다. 선배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사이버머니를 상납하기도 했다. 채팅 사이트를 이용해 지시를 내리거나 상황을 보고토록 했고, 인터넷 카페에서 다른 지역의 폭력조직과 연합을 맺기도 했다. 경찰은 두목 김모(44)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입건하는 한편 달아난 부두목 최모(39)씨 등 조직원 54명을 지명수배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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