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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 돈봉투, 문재인 대통령의 '아픈 기억' 건드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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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는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 중 하나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를 수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혐의를 수사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추적했지만 혐의가 나오지 않았다.

‘성역’으로 여겨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까지 건드리는 강도높은 검찰의 수사로 정 전 비서관은 기소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문재인 변호사였고, 수사팀장은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 중수1과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변호사는 당시 검찰의 수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정황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고 자서전 『운명이다』에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 자서전『운명이다』중에서

 “4월 19일 검찰이 정상문 비서관을 다시 체포했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번에는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혐의가 더해졌다. 그는 내가 퇴임한 후에도 자신이 집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금 범위에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특수활동비를 떼서 몰래 쌓아 두었던 것이다. 그가 내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 친구였다. 그의 평소 성품으로 미루어 나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더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홈페이지에 급히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수사로 드러난 사실은 받아들이면서도 검찰 수사의 편향성을 의심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썼다가 보내지 않은 청원서에 그런 우려가 담겨 있다. 청원서의 내용이 자서전에 등장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고 자서전『운명이다』중에서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권위도 신뢰도, 더 이상 지켜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그리고 법리대로만 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공명심과 승부욕입니다. 사실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당시 검찰의 수사 상황과 태도, 노 전 대통령의 고민과 대응을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근 불거진 검찰의 특수활동비 ‘돈봉투’ 사건은 ‘괘씸죄’의 요건을 갖추고도 남는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특수활동비의 위험성과 생리를 너무 잘 아는 문 대통령이 검찰 조직 내부에서 방치된 잘못된 관행을 ‘적폐’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자신의 측근이 아닌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이정도 비서관을 선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공직 사회의 공사 구분을 분명히 하겠다는 원칙을 인사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통령 특수활동비까지 건드린 검찰이 정작 자신들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은 모습은 새 정부의 방향과 한참 엇나간 것이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억울하고 황당할 수 있겠지만 특수활동비 부메랑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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