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직접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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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 중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 사실을 법정에서 시인한 건 김 전 장관이 처음이다.

블랙리스트 관련자 중 박근혜 전 대통령 직접 지시 첫 증언 #"박 전 대통령 ‘보조금 편향적인 것에 지원되면 안돼" #"김기춘 선에서 집행 잘 안 돼 박 대통령 불만있었을 것" #"장관이지만 문체부 인사권 행사 못해. 청와대 지시 따른 것"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전 장관은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과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에 대한 3차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보조금 집행을 잘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협의로 구속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유동일기자 eddieyou@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협의로 구속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유동일기자 eddieyou@

김 전 장관이 이런 지시를 받은 건 2015년 1월 9일 오전 11시 쯤 김종 당시 문체부 차관과 함께 박 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이 다짜고짜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 잘못된 영화로 인해 젊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한다. 건전콘텐츠를 잘 관리하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김 전 장관에게 물었다. 김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건전콘텐츠라고 콕 집지는 않았지만 ‘보조금 집행이 잘 돼야 한다. 편향적인 것에 지원이 되면 안된다”고 했다“고 대답했다.

이틀 뒤인 1월 11일에는 문체부 예술지원사업 관련 회의차 만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부터 건전콘텐츠 관리를 철저히 이행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았다고도 했다. 김 전 장관은 “김기춘 전 실장에게 보고를 했지만 그 선에서 집행이 잘 안돼서 (박 전 대통령이) 불만스럽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이보다 앞선 2014년 10월 김 전 실장에게서도 같은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2014년 10월 20일 김 전 실장의 공관을 찾아가 건전콘텐츠 태스크포스(TF) 운영 방안을 보고했고, 김 전 실장이 흡족해하면서 내용대로 하라고 지시했느냐”는 특검의 질문에 김 전 장관은 “그렇다”고 시인했다.

김 전 장관은 또 “김 전 실장이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했다. 이후 김 전 장관은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이빙벨 상영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다이빙벨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자 문체부 직원 3명이 징계를 받았고, 영화제 예산 일부가 삭감됐다.

김 전 장관은 “취임 후 부처 인사권이 장관에게 있음에도 직접 행사한 적이 없다”며 “다른 부처 장관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인사 문제는 청와대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길용‧문현경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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