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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구하다 숨진 내 딸, 영원히 선생님으로 남겠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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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 인정을 지시한 15일 고(故) 이지혜(당시 31세) 교사의 아버지 이종락(63)씨는 “아내와 부둥켜안고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 안에 있는 딸의 사진을 보며 ‘드디어 네가 영원히 선생님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고 얘기해 줬다”며 울먹였다.

세월호 사고 때 희생된 기간제 교사 #문재인 대통령, 순직 인정 지시 #김초원·이지혜 교사 아버지들 눈물 #“딸 보낸 세 번째 스승의 날 값진 선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문 대통령이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두 명의 기간제 교사(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논란을 끝내고 고인의 명예를 존중하며 유족을 위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 숨진 기간제 교사 김초원 선생님. 인사혁신처는 고인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춘식 기자]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 숨진 기간제 교사 김초원 선생님. 인사혁신처는 고인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춘식 기자]

고 김초원(당시 26세)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59)씨는 경남 거창의 집에서 농사일을 하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한동안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김씨는 “딸이 떠난 뒤 맞이하는 세 번째 스승의 날에 너무나 값진 선물을 받아 딸의 영정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분향소와 납골당에 가 이 소식을 딸에게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딸의 순직을 인정해 달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여 왔다. 그는 공단이 공무원 유족급여 지급 신청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공단은 공무원연금법상 ‘상시 공무 종사자’라는 용어에 ‘기간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김씨의 유족급여 지급 신청을 거부했다. 공단이 기간제 교사를 공무원으로 인정해야 순직에 따른 국가유공자 등록이 가능하다. 다음달 15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지혜 교사의 유족은 소송을 내지 않았다. 부친 이씨는 김씨와 함께 전국을 돌며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 왔지만 건강이 악화돼 요양 중이다. 이씨는 “딸을 보낸 뒤 밥을 넘기는 것조차 미안하고 괴로웠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 “시행령 개정해 우선 처리”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 숨진 기간제 교사 이지혜 선생님. 인사혁신처는 고인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춘식 기자]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 숨진 기간제 교사 이지혜 선생님. 인사혁신처는 고인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춘식 기자]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교사 숙소가 있는 5층에 있다가 아이들을 구하려고 학생들이 있는 4층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 모두 담임을 맡고 있었다. 생존한 화물기사 A씨는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는데 4층으로 내려가 결국 나오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시신은 이틀 뒤에 수습됐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함께 희생된 11명의 정규 교사 중 미수습자를 제외한 9명은 순직이 인정됐다.

인사혁신처는 이날 시행령을 개정해 두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기로 했다. 윤지현 인사혁신처 대변인은 “그분들을 순직 처리하면 다른 유사 상황의 경우에도 해줘야 하는 문제가 있어 해결이 안 됐다. 오늘 대통령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특별법 제정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처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초원 교사의 순직 인정 소송을 맡고 있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정부가 두 교사를 순직 공무원으로 인정하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각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4월 29일자 8면 세월호 기간제 교사 관련 보도.

중앙일보 4월 29일자 8면 세월호 기간제 교사 관련 보도.

정부가 순직을 인정한다 해도 아버지 김씨는 기간제 교사의 지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계획이다. 윤 변호사와 김씨는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여행자보험 의무 가입 대상에서 제외해 김초원 교사가 공무원으로서 보험 가입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경기도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윤 변호사는 “이 소송을 통해 기간제 교사의 공무원 지위에 대해 법적 근거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김초원 교사 부친에 위로 전화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김씨에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후보 시절부터 생각했다. 스승의 날이라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프겠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씨는 “청와대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와 문 대통령을 바꿔 줬다”며 “너무 감격해 울며 연신 고맙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이기에 감사 받을 일이 아니다’고 답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길용·송승환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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