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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좌·우에 지친 프랑스, 제3의 길 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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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두번째)이 25세 연상의 부인 브리지트 트로노(오른쪽)와 당선 축하 행사에 참석해 손녀(왼쪽)를 팔로 감싸 안고 얘기하고 있다. 손녀는 브리지트가 전 남편 사이에 둔 세 자녀 중 한 명의 딸이다. 2007년 결혼한 마크롱과 브리지트 사이엔 자녀가 없다. [로이터=뉴스1]

7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두번째)이 25세 연상의 부인 브리지트 트로노(오른쪽)와 당선 축하 행사에 참석해 손녀(왼쪽)를 팔로 감싸 안고 얘기하고 있다. 손녀는 브리지트가 전 남편 사이에 둔 세 자녀 중 한 명의 딸이다. 2007년 결혼한 마크롱과 브리지트 사이엔 자녀가 없다. [로이터=뉴스1]

7일 저녁(현지시간) 파리 루브르박물관 광장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프랑스 25대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이 환호하는 수천명의 지지자들 앞으로 걸어나왔다. 같은 당 소속 기성 정치인들과 함께 움직였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당선자가 혼자 움직이는 모습은 그가 내세운 ‘새 정치’의 상징 같았다.

마크롱, 경제는 신자유주의 개혁 #불평등 해소 등 사회정책은 좌파 #친 유럽연합 표방 EU·유로존 유지 #총선 과반 안되면 동거정부 불가피

마크롱은 프랑스 정계의 이단아다. 1년 전 집권 사회당을 탈당해 중도를 선언한 그는 선거에 출마해본 적이 없다. 그가 만든 신생정당 ‘앙마르슈(전진)’엔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다. 그런 그에게 프랑스인들은 66.1%라는 압승을 안겼다. 나치가 항복한 전승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을 배제하려는 행렬이 투표장을 찾은 결과다. ‘마크롱의 승리’보다 ‘르펜의 패배’라는 얘기도 나온다.

마크롱은 당선후 첫 연설에서 “(프랑스인들이 보여준) 분노와 근심, 의구심을 이해한다. 앞으로 5년 동안 누구도 극단주의에 투표할 이유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극우 르펜을 지지한 이들을 의식한 언급이다. 마크롱의 승리가 프랑스 안팎에 던지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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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과 르펜은 EU 강화와 탈퇴, 자유무역과 보호주의, 이민자 선별 관리와 이민 금지 등 모든 사안에서 대립하며 ‘두 개의 프랑스’를 대변했다. 친 유럽연합(EU)을 표방한 마크롱의 당선으로 EU는 통합의 동력을 얻었고 유로존 단일통화인 유로화도 위기를 모면했다. 전후 프랑스를 규정해온 개방 정신과 자유무역은 계속 프랑스를 이끌수 있게 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미국과의 협력도 계속될 전망이다. 개표 직후부터 유럽 정상들의 축하가 쇄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 전 르펜을 지지한 트럼프 대통령도 “대승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정치 신예 마크롱은 사실 프랑스에 몰아닥친 ‘데가지즘’(Degagisme: 구체제나 옛 인물의 청산)의 최대 수혜자다. 오랜 경기침체와 10%가 넘는 실업률, 잇따른 테러에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권에 등을 돌렸고,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눈을 돌렸다. 그 많은 난제들이 이제 마크롱의 어깨위에 놓이게 됐다.

르펜

르펜

그가 국민들이 버린 좌·우가 아닌, 새로운 ‘제 3의 길’을 개척해 낼지는 미지수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감세와 공공부문 축소 등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 등 좌파정책을 ‘프랑스 병’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러자면 그의 뜻을 뒷받침해줄 정치세력 형성이 급선무다.

당장 6월 11, 18일 실시되는 총선에서 얼마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마크롱의 개혁 성패가 좌우된다는 의미다.

마크롱이 “내일부터 진정한 다수를 구축해야 변화를 실행할 수 있다”고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당 몰락이 가속화하면서 앙마르슈가 249~286석(전체 577석)을 차지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기권표(24.66%)와 무효표(11.6%)는 36.26%에 이른다. 1969년 이래 최대치다. 여기에 르펜이 싫어 ‘차악’으로 마크롱을 선택한 유권자도 적지 않아 앙마르슈의 저변 확대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대선 1차 투표때와 엇비슷한 모습으로 다자구도가 형성된다면 마크롱은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다른 정당과의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 구성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게다가 르펜이 되살린 극우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르펜은 결선에서 졌지만 33.9%로 1000만명 이상의 지지를 받아 대중정당으로 자리매김했음을 과시했다. 2002년 대선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얻은 표의 2배다. 르펜이 ‘절반이상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르펜은 패배 후 “당명을 바꾸는 등 우리 운동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키자”고 각오를 다졌다. 이미 프랑스에선 르펜의 대권 3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마크롱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극우와 포퓰리즘에 대한 선망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물론 세계가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마크롱을 주목하는 이유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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