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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생애 첫 투표' 영호남 대학생 "국정 농단 책임은 정치 무관심했던 20대에게도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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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순실(61)씨의 국정농단 사태는 온 국민에게 상처를 줬다. 특히 최씨의 딸 정유라(21)씨가 부모의 배경에 힘입어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젊은층에 큰 좌절감을 안겼다. 이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서 비롯된 만큼 젊은층의 기대감도 높다. 이번에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영호남 대학생들로부터 대선 후보에게 거는 기대와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들어봤다.

최순실 국정농단 계기로 정치에 관심…국민통합 한 목소리 #경북대 신방과 2학년 송주언씨, # "사회에 뿌리 내린 편견 없앨 후보 원해. 20대 투표해야 청년이 살기 좋은 세상 돼" #전남대 정외과 1학년 신우진씨, #"대통령 누가되든 국민 통합 해야,. 당장 아닌 5년, 10년 뒤 바라보며 한 표 행사"

◇경북대 신방과 2학년 송주언씨
"대통령을 뽑는 데 출신 지역을 그렇게나 따지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을 보지 않고 어느 지역에 더 도움이 될지부터 따지니까 정치인들도 이를 악용하는 것 같아요."

태어나 처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게 된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송주언(21)씨는 '경상도 대통령' '전라도 대통령'을 따지는 어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정책은 덮어둔 채 고향이 어디인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행태는 사회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송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나니 후보의 출신 지역부터 따지는 어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송씨. 그는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고 어머니가 경상도 출신이라서 어릴 때부터 지역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다"면서 "이제서야 사회에 지역감정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라져야 할 한국의 대표적 사회 갈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감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긴 어렵겠지만, 모두가 노력해 반드시 없애야 할 일"이라고 했다.

사전투표가 시작된 시점까지도 송씨는 한 후보에게로 마음을 굳히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 선거에 참여하는 거라 설레기도 하고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더욱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송씨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통령의 모습을 뭘까. 송씨는 "그릇된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계급사회가 아닌데도 '금수저'니 '흙수저'니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죠.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 '계급'에 따라 사람을 대해요. 잘못 뿌리내린 인식이죠. 또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도 가해자인 남성이 아닌 피해자인 여성에게 '조심성이 없다'면서 화살을 돌리는 것도 잘못된 사회적 고정관념이에요. 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후보를 뽑을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송씨는 후보들의 일자리 정책에도 관심이 많았다. 송씨는 "아직 진로는 생각 중"이라면서도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엔 7급을 준비하다 9급으로 눈을 낮추고, 여경이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다 문이 좁은 걸 알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들이 청년층의 창업과 중소기업 지원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씨는 일자리 창출과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많은 20대가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20대 투표율이 다른 세대와 비교하면 가장 낮다. 정치에 회의와 환멸을 느낀다고 해서 투표하지 않는다면 20대를 위한 공약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며 "20대 스스로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이란 생각을 갖고 투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내내 지지할 후보를 망설였던 송씨는 인터뷰를 마친 후 경북대 인근 북구 산격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은 송씨는 수줍게 '투표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생애 첫 투표를 무사히 마친 송씨는 "대한민국에 희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4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송주언씨가 대구 북구 산격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4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송주언씨가 대구 북구 산격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전남대 정외과 1학년 신우진씨

“상당수 친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이 없어요. 그래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젊은층들의 미래를 바꿔줄 대통령을 신중하게 뽑을 겁니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 신우진씨가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의 한 건물 외벽에 부착된 대통령 후보 포스터 앞에서 이번에 대선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 신우진씨가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의 한 건물 외벽에 부착된 대통령 후보 포스터 앞에서 이번에 대선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 신우진(19)씨는 오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공직선거법상 만 19세가 넘는 성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돼 이번 대선에서는 1998년 5월 10일생까지만 투표권을 갖는다. 신씨는 생일이 늦은 친구들과 달리 1998년 3월생이어서 투표를 할 수 있다.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신씨는 수능을 치르고 친구들과 서울에 올라가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수차례 참여했다. 신씨는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을 보며 우리나라가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수능을 앞두고 있던 신씨는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문제에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엄청난 노력을 해도 들어가기 어려운 명문대에 돈과 권력을 쥔 부모의 도움을 받아 쉽게 입학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화가 났다. 신씨는 “정유라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라는 말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신씨가 대한민국을 바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기다려온 이유다.

신씨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은 대학생을 비롯한 20대에게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고 투표도 하지 않아 실패가 예견된 정권이 탄생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의미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연령대별 투표율은 20대 68.5%, 30대 70.0%, 40대 75.6%, 50대 82%, 60대 이상 80.9%를 기록했다.

신씨는 이번 대선 후보들이 등록금과 취업 등 대학생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을 지켜보며 대선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다만 일부 후보들의 대학생 관련 공약이 재원 마련 방안 등 구체성이 떨어지는 점에서 '공약(空約)'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신씨는 “취업준비생들이 가고 싶은 기업, 회사 규모는 작더라도 일한만큼 급여를 주고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중소기업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신씨는 새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을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판단했다. 신씨는 “지난해 이후 우리 사회가 갈등과 편가르기가 커지는 것 같다”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소수의 국민과 다수의 국민이 함께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영호남 지역 등 모든 유권자가 지역감정을 배제한 채 투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대학생들의 투표 참여를 강조했다. “투표권은 우리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미래를 바꿀 대통령을 뽑는 역할을 단지 귀찮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세대에 맡기지 말고 앞장서서 해보자”고 말했다.

신씨는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순식간에 바뀌진 않겠지만 우리가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며 가정을 꾸릴 5년, 10년 뒤에는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9일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대구=김정석 기자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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