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센인의 수난 1세기를 보여주는 소록도 보존 프로젝트 이끄는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

중앙일보

입력

그 땅은 한때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소설가 이청준은 영웅주의와 우상화가 휩쓰는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 소록도(小鹿島)를 무대로 1970년대 개발독재의 한국을 풍자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녹동항 앞바다에 떠 있는 소록도는 영혼이나마 천국에 들어가고자 했던 천형(天刑)의 한센인들이 100년 넘게 살아온 작은 섬이다. 1916년 일제강점기에 자혜의원으로 시작한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가 1세기를 넘긴 지금, 수난의 섬에서 치유의 섬으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발보다 보존, '장소의 혼' 기억하는 공공박물관 소록도로 재생하자

식민지시대에 한센인이 지은 집을 배경으로 선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 그는 "100년에 걸쳐 한센병 환자들이 갇혀 지낸 소록도의 건축물은 역사의 기억이자 상흔의 징표로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지시대에 한센인이 지은 집을 배경으로 선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 그는 "100년에 걸쳐 한센병 환자들이 갇혀 지낸 소록도의 건축물은 역사의 기억이자 상흔의 징표로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는 건축가는 조성룡(73) 성균관대 석좌교수다. 5년 여 전부터 수시로 소록도를 찾아 개발보다 보존에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수천 명이 마을을 이뤄 갇혀 있던 섬에는 이제 520여 명 남짓이 남았고, 평균 연령이 74세라 2040년쯤에는 환자들이 자연 소멸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그 이후에 이 섬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조 교수와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다.

“벌써 관광지로 돈 벌겠다는 개발업자들이 손길을 뻗치고 있어요. 해수욕장도 하나 개장했죠. 세계 한센병 관리 역사에서 소록도만큼 강압적으로 지속해서 환자들을 한 곳에 가둬둔 사례가 없습니다. 식민지와 군부통치시대 등 한 세기에 걸친 처연한 역사의 기억이 보존된 ‘장소의 혼’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면 되겠습니까.”

조 교수는 박형철 국립소록도병원장과 의기투합해 건축 보존학을 응용한 건물 살리기에 나섰다. 지난해 병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소록도로 들어가는 입구 주차장에 남아있던 1970년대 집 한 채를 원형 상태로 다듬어 안내소 겸 쉼터로 만들었다. 한센인 시인 한하운(1920~75)의 시, 옛 지도 등이 담긴 집은 한센인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한 눈에 보여준다.

식민지시대에 한센인이 지은 집을 배경으로 선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 그는 "100년에 걸쳐 한센병 환자들이 갇혀 지낸 소록도의 건축물은 역사의 기억이자 상흔의 징표로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지시대에 한센인이 지은 집을 배경으로 선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 그는 "100년에 걸쳐 한센병 환자들이 갇혀 지낸 소록도의 건축물은 역사의 기억이자 상흔의 징표로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에 걸쳐 그때그때 다양한 재료로 지었기 때문에 건축사(建築史)의 시각으로 봐도 소록도는 흥미로워요. 처음 폐가들이 즐비한 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밀림처럼 무성한 수풀 탓에 보이지 않는 집도 많았어요. 나무들을 쳐내면서 한 채 한 채 들여다보니 교회 건물을 비롯해 정성과 열망으로 지어진 수준이 상당합니다. 건축 보존학은 사회학·철학·인류학 등이 뭉뚱그려진 통섭학문인데 소록도야말로 이 보존학을 실천할 만한 본보기라 할 수 있죠.”

오는 16일 101주년 기념일은 소록도를 건축 보존학의 성지로 만들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지난해 말부터 약 다섯 달에 걸쳐 조 교수팀이 해온 서생리 일대 폐건물 유지보수 및 활용공사가 끝나 첫 선을 보이며 보존의 중요함을 알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경완 성균건축도시설계원 연구실장은 “강관 파이프를 써서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큰 부분만 보강하면서 가능하면 기와 한 장, 벽 돌 한 무더기도 그대로 뒀다”고 말했다.

이미 선유도 공원과 어린이 대공원 ‘꿈마루’를 재활용한 작업으로 도시 재생의 본보기를 보여줬던 조 교수는 “공동체의 역사를 음미하고 수집해 되돌려놓은 풍경으로서 소록도는 21세기의 살아있는 공공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소록도(전남 고흥군)=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