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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농가 걱정 덜어주는 농업재해보험 확산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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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성대규보험개발원 원장

성대규보험개발원 원장

중학교 때 어머니와 금호강 고수부지를 일구어 배추와 무를 심은 적이 있었다. 큼직한 배추를 시장에 내다 팔 생각만 해도 배가 불렀다. 그러나 늦은 장마가 배추와 무를 쓸어 가버리고 말았다. 마음을 추슬러 다시 배추와 무를 파종하였지만 파종 시기가 늦어 도저히 시장에 팔 수 없었다. 농사란 하늘의 도움도 있어야지 사람의 힘으로만은 잘하기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지금은 이런 농가의 걱정이 필요 없다. 수확량 감소로 인한 손해를 농업재해보험이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농업재해보험은 2001년부터 정부가 농가에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면서 활성화된 정책보험이다. 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태풍이 와도 돌풍과 우박으로 사과, 배, 벼 등의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해도 걱정이 없다. 2005년 대규모 피해를 책임지는 국가재보험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농업재해보험법 개정 이후 민영 보험회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농업재해보험이 중요한 농업정책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세 가지의 정부 결단이 있었다. 첫째, 국가 재보험의 도입이다. 태풍 등에 따른 농산물 피해는 발생할 빈도는 낮지만 보험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액이 큰 경우가 많다. 국가재보험에 관한 외국 사례는 많다. 테러위험은 미국·독일·영국, 허리케인은 미국 플로리다 주정부, 지진 은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각각 재보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농가도 농작물 손해의 일정 부분을 책임지는 자기부담금 제도다. 농업재해를 국가 예산으로 하지 않고 보험으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보험가입자의 손해 감소 노력이다. 자기부담금 제도 하에서는 일정 규모 이하의 손해는 농가가 부담한다. 따라서 농가는 재해로 인한 손해를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유인이 있다.

셋째, 농가가 부담하는 보험료를 정부가 지원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해마다 정부의 예비비로 농산물 피해를 보상받는 농가로서는 보험료까지 내면서 농업재해보험에 가입할 유인이 적었다.

농업재해보험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2016년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률은 27.5%다. 무엇보다 정부가 긴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벌써부터 농업재해보험의 가입이 늘어남에 따른 보험료 지원 증가를 걱정한다. 그러나 정부가 재해복구비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농가가 일부 부담하는 것이 재정에 오히려 도움이 됐음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또 수 년 동안 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출의 비율이 낮기 때문에 보험료를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큰 자연 재해가 발생하면 과거 10년 이상의 보험료 수입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음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미국 보험회사는 25년 동안 받은 총 보험료의 4배를 한 번의 지진 때문에 보상한 적이 있다.

사람이 날씨를 이길 수는 없지만 농업재해보험을 이용하여 날씨의 위험을 나눠 가질 수는 있다. 농업재해보험의 성공사례가 전통시장 화재보험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까지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성대규 보험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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