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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 100일째 밤에도 美 분열 조장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는 29일(현지시간) 밤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의 분열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백악관 기자단 만찬 행사에 36년 만에 현직 대통령 불참 #트럼프는 유세장 찾아 "워싱턴의 오물들"이라 맹비난

이날 워싱턴 힐튼호텔에서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행사가 열렸다. 출입기자단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인사들과 관료, 할리우드 스타들을 초청해 교류를 넓히는 연례 행사다. 하이라이트는 유머를 섞어 시국을 풍자하는 대통령의 만찬 연설.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 2011년까지만 해도 '저명인사'의 한 명으로 이 행사에 꾸준히 참석했던 트럼프가 정작 대통령이 된 올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워싱턴에서 100마일(161km)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의 집회에서 기자단 행사를 향해 "워싱턴의 오물들"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29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 대신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를 방문해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AP=뉴시스]

29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 대신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를 방문해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AP=뉴시스]

1924년 케빈 쿨리지 전 대통령이 기자단 만찬에 참석한 이래 93년 동안 현직 대통령이 불참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하야한 리처드 닉슨과 총격을 당해 수술한 로널드 레이건(1981년)의 두 차례 뿐이었다.

트럼프의 언론 불신을 반영하듯 트럼프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물론 초청받은 백악관 직원 거의 전원이 불참했다. 만찬장의 레드카펫을 밟은 유명 인사와 정치인 수는 예년의 절반 수준이었고 그나마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정도가 눈에 띄는 이름이었다.

연설에 나선 코미디언 하산 민하지는 "트럼프는 '최고사령관(commander-in-chief)'이 아닌 '최고거짓말쟁이(liar-in-chief)"라고 비꼬았다. 이날 행사의 타이틀도 트럼프의 언론탄압을 빗대 '수정헌법 1조(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사회의 언론의 역할'로 규정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유세에 나선 트럼프는 '취임 100일 성과'를 설명하는 연설의 상당 부분을 언론 공격에 할애했다.

그는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오늘 밤 워싱턴에서 또 하나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CNN과 MSNBC 방송 등 '가짜 뉴스(fake news)'들은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싶었겠지만, 매우 지겨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 발이 묶였다. 거짓보도를 일삼는 언론이 매우 모욕적인 낙제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할리우드 배우들과 워싱턴 언론계 인사들은 오늘 호텔 방에서 서로를 위안하고 있을 것"이라며 "워싱턴 오물(swamp)들로부터 100마일 이상 떨어진 이곳에 더 많은 군중과 더 나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더없이 스릴을 느낀다"고 목청을 높였다. 뉴욕타임스를 향해서도 "망해가는 언론사이자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했고, "내년에도 (기자단 만찬에 안 가고) 이곳에 올 것"이라고 했다. 마치 대선 유세 때와 같은 자극적 연설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닉슨 때부터 빌 클린턴 행정부까지 30여 년간 백악관 보좌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교수는 이날 CNN에 "내가 들은 현직 대통령의 연설 중 가장 분열적인 연설이었다"고 혹평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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