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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9, 마지막 TV토론에 거는 기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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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호 면

사설

대통령 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전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후보들 간 막판 쟁탈전이 뜨겁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거나 ‘지지 후보를 바꿀 의향이 있다’는 부동층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오면 부동층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 현상이고 보면, 이번과 같은 부동층 표류는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심이 표류하는 근본적 이유는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5월 9일 치러지는 19대 대선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3월 10일) 결정으로 막이 올랐다. 불과 두 달여 만의 초고속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간과 자료를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을 검증·판단할 수 있는 기회인 TV토론마저 상대방 흠집 내기와 네거티브, 종북몰이와 역색깔론 공방, 그리고 시정잡배들 싸움을 연상케 하는 저질·막말의 진흙탕 대결로 흐르면서 검증은커녕 오히려 정치 불신과 혐오를 키웠다는 평가다. 그제까지 모두 네 차례의 TV토론이 이뤄졌지만 대다수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당장 발등의 불이 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북한 핵 문제, 1조원에 이르는 사드 비용 청구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폐기 카드를 들고 나온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해법과 로드맵을 제시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사드 문제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을 받도록 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아예 “(미국에) 사드를 다시 가져가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사드 배치가 전투기 몇 대 구매하는 정도의 단순한 사안이 아니지 않는가.

북핵으로 촉발된 사드 문제는 근본적으로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힘 겨루기라는 속성과 한·미 동맹, 대중국 관계, 나아가 한반도 통일전략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고도의 전략과 지혜를 모아 대처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다.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엄중한 사안에 대해 이처럼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북한 문제에서 한국이 무시·소외당하는 ‘코리아 패싱’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보수 진영의 구태도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안철수(국민의당)·홍준표(자유한국당)·유승민(바른정당) 후보의 단일화를 요구하는 바른정당 의원 20명은 그제 자당 소속 유 후보를 향해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진정성을 보여달라”며 사실상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좌파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에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선거전에서 정당 간 연대나 단일화는 있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치와 철학에 부합하느냐가 잣대가 돼야 한다. ‘국정 농단 세력과의 결별’을 기치로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창당한 바른정당이 불과 석 달 만에 자기 당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이유로 후보를 사퇴시키고 도로 합치자고 하고 있으니 이러고도 ‘새로운 보수’를 자처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정당과 후보들은 지금 왜 ‘장미 대선’을 치르고 있는지 그 원인을 냉철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대선은 ‘촛불 시민’이 만든 선거다. 최순실 일파의 국정 농단, 법치를 외면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제왕적으로 군림해 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치 행태, 노력하는 사람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깨어진 나라, 기득권만 대접받는 불공정한 사회를 끝내자는 ‘광장’의 열망과 외침이 대통령의 탄핵을 거쳐 조기 대선을 불러온 원동력이 됐다. 그렇다면 5·9 대선은 이전의 대한민국과는 확연히 달라진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분기점이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지금 정치권의 행태는 이런 시대정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라로 대한민국을 리셋(Reset)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놓고 다투는 혁신 대결은 실종된 지 오래이고, 정치공학을 앞세운 득표 전략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이게 과연 추운 겨울밤 광장을 에워싸며 절규했던 시민들이 요구했던 모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선까지 이제 한 차례의 토론(5월 2일)이 남아 있다. 후보들은 이번만이라도 대한민국 대개조의 혁신 방안을 놓고 경쟁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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