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북 정책 양대 포인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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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초강경 경제제재와 외교적 수단을 통해 압박하며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낸다. 군사행동 옵션은 히든 카드로 남겨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26일(현지시간) 밝힌 ‘신 대북 정책 기조’를 요약하면 이렇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가 핵심이다.

경제제재와 외교수단 통해 강한 압박 가하며 협상 문 열어둬 #군사행동은 후순위 미루지만 가능한 옵션으로 남겨 두기로

그간 트럼프 정부는 북한 경제의 생명줄을 쥔 중국 카드 활용, 군사적 행동 가능성 공개, 핵항모 칼빈슨 함 파견 등을 통해 대북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려왔다.

이날 주목되는 건 크게 두가지.

먼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협상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날 오후 상원의원 100명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브리핑을 실시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브리핑 후 발표한 공동성명문에서 “미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협상에의 문을 열어두겠다(We remain open to negotiations towards that goal)”고 했다.

그동안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만 응할 뜻을 밝혀왔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하고 도발적 언행을 중단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 대화할 수 있다”(지난해 5월 18일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는 게 흔들리지 않는 대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날 발표문에선 이 부분이 ‘비핵화란 목표를 향한 협상’이란 표현으로 미묘하게 바뀌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다소 톤이 바뀌어 미 정부 측에 확인했지만 큰 틀의 변화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삼청동 공관에서 한-미 공동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펜스 부통령은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말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삼청동 공관에서 한-미 공동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펜스 부통령은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말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사실 이는 갑작스런 전환은 아니다. 지난 1월 취임 후 부터 트럼프 주변 인사들은 표면적으론 강경 노선을 고수하면서도 “결국 남는 수는 협상밖에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털어놓곤 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결국 대화 재개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한국 신 정권과의 조율 등을 감안하면 올 가을 경부터 대북 정책의 변화가 드러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협상 재개까지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북한의 핵개발 포기→비핵화 협상→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태도를 보면 ‘북한의 핵개발 포기’란 전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 압박→‘선 동결, 후 폐기’ 협상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기엔 북한으로선 일단 핵을 유지한 채 협상을 끌어갈 수 있고, 미국도 미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 중단까지 시간을 벌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전략과 얼마나 다른지 아직 불분명하다”(CNN)는 지적도 상당하다. 호전적 수사가 포함되고 압박의 수위가 다소 강해졌을 뿐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미 언론들이 이날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를 크게 다루지 않는 것도 이런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군사행동을 후순위로 돌리면서도 ‘옵션(선택지)’으로 남겨뒀다는 것이다.

이날 공동성명에는 “(협상의 문을 열어놓지만) 우리는 우리(미국)와 동맹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we remain prepared to defend ourselves and our Allies)”고 못을 박았다. ‘모든 옵션’ ‘군사행동’이란 직접적 표현은 안 썼지만 이날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선 ‘군사행동’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CNN은 이날 브리핑이 ‘기밀’로 분류돼 의원들이 구체적 내용을 공개할 수 없었다면서도 “테드 크루즈 의원은 ‘브리핑에서 받은 느낌은 미군이 (군사)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국무부 마크 토너 대변인도 “(브리핑에선) 평양을 협상에 응하게끔 하는 외교ㆍ경제ㆍ군사 분야 압력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보스턴글로브지는 이날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리를 인용, “이번 브리핑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기밀정보 ▶미국의 대응 옵션(군사대응 포함) ▶중국 및 다른 국가들에게 대북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고 나아가 새로운 제재(penalties)를 가하는 방안의 3가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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