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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우기 싫어서’…손님 매단 채 달린 택시기사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6일 자정을 넘긴 시간, 이모(46)씨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지인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한 택시가 이씨 시야에 들어왔다. 이씨는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운 뒤 조수석 문 손잡이를 잡았다.

26일 김씨의 택시가 이씨를 매단 채 달리고 있다. [사진 서울 도봉경찰서]

26일 김씨의 택시가 이씨를 매단 채 달리고 있다. [사진 서울 도봉경찰서]

26일 이씨가 택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사진 서울 도봉경찰서]

26일 이씨가 택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사진 서울 도봉경찰서]

그 순간 택시가 급발진을 했다. "내가 손잡이를 잡고 있는 걸 알면 멈추겠지?"라는 생각에 이씨는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택시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이씨는 15m 가량을 질질 끌려가다 바닥에 넘어졌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승차하려는 손님을 택시에 매단 채 급가속해 다치게 한 혐의(특수상해)로 택시기사 김모(62)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손잡이를 놓친 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피해자 이씨는 도로에 얼굴을 부딪쳐 골절상을 입었다. 김씨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 옆에 있던 이씨의 지인이 너무 만취한 것처럼 보여 승차를 거부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1년에 2~3번은 만취 승객 때문에 큰 곤욕을 치러 차에 태우고 싶지 않았다. 승차를 거부한 건 맞지만 (이씨가) 도로에 떨어져 다친 줄은 몰랐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의 범행이 주도면밀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씨를 내친 직후 곧바로 택시 승차 버튼을 눌러 주변의 의심을 피했고 상대적으로 폐쇄회로(CC)TV가 적은 골목길 위주로 도망쳤다.

경찰은 이씨를 치고 도주한 차량이 주황색 택시라는 것만 파악하고 사건에 접근했다. 하지만 주위가 어두워 김씨의 차량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 택시 좌측에 붙어있던 광고물의 '하'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서울 시내 택시 220여대를 조사한 경찰은 당시 차량을 파악해 20여일 만에 김씨를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보강 조사 후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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