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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안재홍, "이선균 선배의 문자, 캡쳐해서 간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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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2015~2016, tvN, 이하 ‘응팔’)의 사랑스러운 6수생 정봉 캐릭터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독립영화에선 ‘상남자’ 역할도 곧잘 도맡던 배우다. 더디지만 확고한 변화의 나이테를 쌓고 있는 안재홍(31).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그에게 또 하나의 시도였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서는 예종 임금을 늘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궁중 사관이다.

“대다수 장면을 이선균 선배와 함께했다. 지방 촬영이 99%여서, 쉬는 날 둘이 전주 한옥마을에서 봉지 칵테일도 마시고 야구장에도 갔다. 선배가 능동적으로 한 장면, 장면을 책임지고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바도 크다. 선균 선배는 나한테 좀 특별한 배우다.”

원래 알던 사이인가.

“선배가 주연한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 홍상수 감독)에 학교 친구들과 제작부로 참가하면서 처음 만났다. 내가 건국대학교 영화과 2기인데, 선균 선배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2기거든. 자신도 선배 없는 신생 학과의 막막함을 많이 겪었다고 우리한테 엄청 잘해 주셨다. 촬영 끝나면 쇠고기, 소 곱창도 자주 사줬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 ‘족구왕’이 개봉했을 때도 선균 선배한테 먼저 연락이 왔다. 너무 좋아서 그 문자 메시지 화면을 캡처해서 간직했다.”

문자 내용이 뭐였나.

“영화 너무 좋더라. 잘 봤다.”

이번 영화 출연을 조금 망설였다고.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저예산 영화 주연은 해봤지만, 상업영화에서 큰 역할은 경험이 없잖나. 촬영 결정하고도 하루에 열 번 이상 ‘걱정말아요 그대’ 노래를 들었다. 혼자 제주도도 다녀왔다.”

'임금님의 사건 수첩'

'임금님의 사건 수첩'

제주도 가서 뭐했나.

“카페에서 시나리오 읽다가 너무 허세인 것 같아서 그냥 제주도에 있는 친구를 만나 놀았다. 혼자 성산일출봉·우도도 가고. 뭔가 스스로 환기가 된 시간이었다.”

‘머니볼’(2011, 베넷 밀러 감독)에서 미국 메이저리그 최약체 팀을 혈혈단신 승리로 이끄는 야구단장 빌리(브래드 피트)와 전략가 피터(조나 힐)의 관계에서 예종과 이서에 관한 힌트를 얻었다고.

“‘머니볼’의 빌리처럼, 예종은 임금이지만 적이 더 많은 외로운 사람이다. 이서가 예종 곁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 그를 채워주는 존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 조나 힐을 엄청 좋아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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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한 번 본 것은 사진 찍듯 기억하는 재주가 있고, 장원급제까지 한 수재다. 그런데 영화에선 늘 예종에게 골탕 먹기 일쑤다. 자칫 명랑만화 캐릭터처럼 비현실적이고 과장되게 비칠 수 있는데.

“사실 예종은 이서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상대다. 그런데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유쾌하고 밝은 오락영화잖나. 어느 순간부터 이서가 옥체를 건드려도 될까, 눈을 마주치고 대들 수 있을까. 그런 현실적인 타이밍을 문현성 감독과 자주 의논했다. 극 중 상황에서 오는 엇박자의 코믹한 호흡 속에 이서의 지력, 예종을 향한 충성심을 자연스레 드러내려 했다.” 

'임금님의 사건 수첩'

'임금님의 사건 수첩'

이서가 기억을 불러내는 제스처는 어떻게 고안했나.

“양 주먹을 꽉 쥐었더니 영락없는 ‘어바웃 타임’(2013, 리차드 커티스 감독) 패러디더라. 손가락으로 탁탁탁 바닥을 두드리는 건 ‘감시자들’(2013, 조의석·김병서 감독)에서 한효주씨가 했다. 한쪽 손 손가락 두 개로 관자놀이를 꾹 짚었더니 선균 선배가 양손 다 써보라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해봤는데, 영화 톤에 어울렸다. 좀 웃기고, 만화 같이 느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릴 적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구니스’(1985, 리처드 도너 감독) 같은 모험영화를 즐겨 봤는데, ‘임금님의 사건수첩’도 그런 재미를 주면 좋겠다.”

촬영 전 했던 고민들은 해결됐을까.

“이 영화를 찍기 전과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와 닿을 것 같다. 이런 느낌들을 나이테처럼 쌓아가고 싶다.”

화보 촬영 때 ‘귀엽다’는 칭찬이 나올 때마다 어색해하더라.

“귀엽지도 않은데…. 약간 ‘힘내세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웃음).”

‘응팔’ 이후 대중에겐 엉뚱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각인됐다.

“변화에 대한 고민은 계속한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나에겐 캐릭터의 성장 과정이 온전히 드러나는 역할을 연기한 첫 작품이다. 5월에 방영하는 ‘쌈, 마이웨이’(KBS2)라는 TV 드라마를 하게 됐는데, 거기선 지금까지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다. 아직 젊잖나.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다.”

올 초 ‘청년’ 역으로 주연한 연극 ‘청춘예찬’도 그 일환일까.

“트리플 캐스팅이었는데 그냥 나만의 청년에 집중했다. 다른 친구들과 경쟁한다거나,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정말 많이 배웠다.”

‘청년’은 특별한 존재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4년이나 고민할 만큼. 실제로도 그 청년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내성적인 사람. 낯가림이 특히 심하다. 친한 친구들 만나면 편하게 지내다가 처음 보는 사람한텐 태도가 달라진다. 한땐 ‘내가 솔직하지 못한 걸까’ 고민도 많이 했다. 지금은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하게 지내려고 한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3월 23일 개봉)에도 출연했다. 지난해 촬영을 끝낸 단편영화도 있다고.

“김초희 감독의 ‘산나물 처녀’라고, 서울에서 사나흘 만에 다 찍었다. 오는 9월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윤여정 선생님, 정유미 선배와 함께 했는데, 영화가 되게 특이하다. 대사도 ‘정말, 이쁘지 않소’ 막 이러고.”

무슨 역할이기에.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 아니고 선남(웃음).”

인터뷰 때마다 “안재홍과 꼭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했던 배우 이솜과 얼마 전 저예산영화 ‘소공녀’(전고운 감독) 촬영을 마쳤다고. ‘1999, 면회’(2013, 김태곤 감독)부터 함께한 영화사 광화문시네마 제작 작품인데.

 “이솜씨는 ‘좀 독특하다’ 생각했는데, 만나 보니 역시 재밌는 친구더라. ‘소공녀’ 현장에서 상업영화와 또 다르게 라이브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광화문시네마 영화는 카메오로라도 계속 꼭 출연하고 싶다.”

'임금님의 사건 수첩'

'임금님의 사건 수첩'

배우로서 목표라면.

“지금도 과분하지만, 계속 과분하게 사랑받고 싶다. 배우로서 많이 깨달으면서 잘해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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