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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무서운 줄 알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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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청와대와 여당은 세금 문제에선 아예 발을 빼기로 작정한 것 같다. 20일 열릴 예정이던 조세개혁 공청회 일정은 5월 이후로 미뤄졌다. 내친김에 5월 지방선거까지는 조세개혁에 대한 논의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연히 세금 얘기를 더 꺼내 봐야 본전도 못 건질 것 같고, 지방선거에도 불리할 것이란 계산에서다.

세금 문제가 이처럼 꼬이게 된 단초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공했다. 연초 국정연설을 통해 증세(增稅)의 필요성을 시사하면서 세금논쟁에 불을 댕긴 것이다. 양극화와 고령화.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 재원 마련책을 강구하겠다는 발언은 곧바로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증세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 없다며 물러섰다. 그러나 이것은 논란의 시작에 불과했다.

한번 불붙은 세금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재경부의 '맞벌이 부부에 대한 공제 축소' 방침이다. 정부는 불합리한 공제제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누가 봐도 세수(稅收)를 늘리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반발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여기에다 여당의 철회 의사 표명과 정부의 강행 방침이 엇갈리면서 세금논쟁은 정부와 여당 간의 자중지란(自中之亂)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런 판국에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를 대폭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장기 조세개혁안이 터져나왔으니 여론이 곱게 돌아갔을 리 만무하다. 이쯤 되자 세금 문제는 돌연 정부.여당의 골칫거리가 돼 버렸다. 청와대와 여당으로선 논란의 불씨가 더 커지기 전에 덮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진 것이다.

사실 정부가 마련 중이던 중장기 조세개혁안의 내용을 자세히 뜯어 보면 그동안 누차 제기됐던 사안이 대부분이다. 각종 비과세.공제제도로 누더기가 돼 버린 현행 세제는 어떤 식으로든 정비할 필요가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합리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조세개혁안은 증세 주장과 맞물리면서 싸잡아 비판의 도마에 올랐고, 급기야 여론의 반대 속에 폐기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기에는 '큰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국민의 세금 부담을 가볍게 여기는 편의주의가 한몫했다. 재정 확대의 당위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최소한의 여론 수렴조차 없이 무작정 세금을 더 내라는 식의 무모함과 경솔함이 여론의 호된 질책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제 세금에 대한 국민의 의식은 예전 같지 않다. 세금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고, 재정 운용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도 매서워졌다. 어느 정권이든 세금 문제를 섣불리 허술하게 다뤘다간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과거 선진국에선 세금을 잘못 올렸다가 정권이 바뀐 사례가 허다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