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 더 바쁜 ‘부통령 징크스’…펜스는 ‘사드’ , 바이든 전 부통령은 ‘베팅’ 논란

중앙일보

입력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방한 첫날인 16일 예기치 못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 관련 미·중 합의설’이 불거졌다. “사드 배치 완료와 실전 운용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백악관 외교보좌관의 발언이 진원지였다.

백악관 외교보좌관 “사드 차기 대통령 결정” 파장 #미·중 간 한국 배제한 ‘사드 합의’ 의혹 가속화 #2013년 바이든도 “미 반대편 베팅 말라” 발언 논란

한·미 당국은 즉각 “사드 배치를 조속히 완료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서둘러 해명하고 나섰다. 17일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측도 “사드는 한·미가 협의한 대로 정상적으로 추진될 것”이란 동일한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 발언을 누가 했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는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측이 한국과는 사전 협의 없이 '중국의 북핵 해결 노력에 따라 사드 배치 속도를 늦추거나 철회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는 미·중 합의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미 측의 돌출성 발언과 이를 해명하기에 더 바쁜 양국 당국자들을 바라보는 한국 외교가는 3년4개월 전에 본 듯한 데자뷔를 느끼고 있다. 공교롭게도 2013년12월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본의 아닌’ 발언으로 한국에겐 외교적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일이 벌어졌다.

바이든 부통령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미국은 한국에 베팅하고 있다.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마침 중국이 대폭 확장된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고, 무력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출범 초기부터 친중정책 기조를 택해온 박근혜 정부를 향해 ‘중국 쪽으로 기울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란 해석들이 쏟아졌다.

불과 몇시간 만에 주한 미 대사관은 “미국이 아·태지역을 떠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통역이 정확히 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냈다. 미 국무부도 같은 취지로 언론 논평을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바이든 부통령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한·미 당국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오바마 행정부 2기 출범과 함께 가속화했던 아시아중시 정책과 관련해 “미국은 아·태지역에 중점을 둘 것인 만큼 미국이 이 지역을 내버려두고 떠날 것이라는 반대 입장에 베팅을 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팅 파장’은 이미 일파만파였고, 2시간 25분 동안 이어졌던 바이든 부통령과 박 대통령의 면담 전체가 이 발언에 가려졌다. 미국이 한국에 대놓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과 우려는 한동안 계속됐다.

이에 외교가에선 “이쯤 되면 징크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다른 이슈도 아닌 한·중관계와 직결되는 예민한 사드 문제에 대한 언급이 문제가 된 것도 비슷했다. 지난달 방한했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을 동맹, 한국을 파트너로 칭한 뒤 언론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국무부가 해명에 나섰던 ‘예고탄’까지 겹쳐 국내 여론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사드 발언 논란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17일 오후 펜스 부통령이 육성으로 밝힐 메시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펜스 부통령은 황교안 대행과 면담 및 업무오찬을 한 뒤 오후 3시 함께 입장을 발표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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