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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콜드플레이 첫 내한공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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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7년 만에 처음 내한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 크리스 마틴은 "오늘 밤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사진 현대카드]

데뷔 17년 만에 처음 내한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 크리스 마틴은 "오늘 밤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사진 현대카드]

“17년 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오늘 서울에서 최고의 무대를 약속할게요.”
영국의 슈퍼 밴드 콜드플레이의 한 마디는 그동안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2000년 1집 ‘패러슈트(Parachute)’로 데뷔 이후 한 번도 한국을 찾지 않은 자신들에 대한 팬들의 가슴앓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15~16일 양일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를 찾은 10만 관객은 U2ㆍ마돈나ㆍ롤링스톤스와 함께 오매불망 기다려온 ‘빅4’를 향한 한풀이를 시작했다.

이번 공연은 2015년 12월 발매된 정규 7집 ‘어 헤드 풀 오브 드림스(A Head Full of Dreams)’ 발매 기념 투어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 라플라타를 시작으로 오는 10월 미국 샌디에이고까지 전 세계 87개 도시를 도는 대장정이다. 특히 서울 공연은 티켓 예매 당시 동시 접속자 수가 90만 명에 달해 예매 사이트가 마비돼 1회 추가 공연을 마련하는 등 '피튀기는' 표 구하기 전쟁이 벌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좌석을 늘려달라”는 거듭된 팬들의 요청에 현대카드는 시야제한석까지 추가로 오픈했다. 해외 아티스트가 이틀 연속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여는 것도, 단일 공연으로 10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15~16일 잠실주경기장 10만 명 운집 최다관객 #첫곡 '어 헤드 풀 오브 드림스'부터 떼창 시작해 #'비바 라 비다' 등 웅장한 무대 120분간 이어져 #'사우스 코리아송' 등 한국팬 위한 깜짝 무대도

15일 오후 8시. 5만 관객이 운집한 공연장엔 전운이 감돌았다. 5분 뒤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울려 퍼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한국 팬들의 “우주최강 밴드를 소개합니다, 콜드플레이!”라는 소개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크리스 마틴(보컬ㆍ건반), 조니 버클랜드(기타), 가이 베리맨(베이스), 윌 챔피언(드럼)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일제히 손목에 찬 자일로 밴드를 들며 환호했다. 원격조정이 가능한 LED 팔찌인 자일로 밴드는 곡에 따라 빨강ㆍ파랑ㆍ보라 등으로 바뀌면서 공연장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였다. 팬들의 손놀림은 마치 밴드의 반주에 맞춰 밤하늘에 그림을 그리듯 바삐 움직였다.

손목에 자일로 밴드를 차고 열광하고 있는 관객들과 이를 지휘하는 크리스 마틴. [사진 현대카드]

손목에 자일로 밴드를 차고 열광하고 있는 관객들과 이를 지휘하는 크리스 마틴. [사진 현대카드]

이번 투어의 타이틀인 첫 곡 ‘어 헤드 풀 오브 드림스’부터 ‘떼창’을 시작한 관객들은 ‘파라다이스(Paradise)’,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등 쉴새없이 우렁찬 합창을 이어갔다. ‘비바 라 비다’의 웅장한 반주는 심장 고동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마틴은 “이번엔 낮게, 아래로”라며 준비자세를 취한 뒤 “더 높게 점프!” 등 오케스트라 지휘자마냥 돌출무대를 뛰어다니며 관객 호응을 유도했다. 특히 지난 연말 시국과 맞물려 JTBC ‘뉴스룸’ 엔딩곡으로 등장하는 등 더욱 사랑받았던 이 노래가 나오자 지정석 관객들도 모두 일어나 스탠딩 파티에 가담했다.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제목과 부패한 권력의 몰락을 풍자한 가사로, 멤버들 역시 “가장 만족스러운 곡”으로 꼽는 노래다.  

세월호 3주기에 맞춰 방한한 만큼 한국팬들을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를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고 밝힌 마틴의 말대로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옐로(Yellow)’를 부를 땐 노란색 종이가 흩날리며 노란 조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전 부인인 기네스 펠트로가 부친상으로 힘들어했을 당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픽스 유(Fix You)’ 역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하늘을 본다”던 마틴은 이날도 무대에 누워 도입부를 불렀고 “별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그의 마음 역시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들고 나온 마틴은 한국 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짤막하게 만든 ‘사우스 코리아 송(South Korea Song)’을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별도의 앙코르 공연 없이 120분 동안 23곡을 꽉 채운 이들은 체인스모커스와 함께 만든 ‘섬싱 저스트 라이크 디스(Something Just Like This)’와 ‘업&업(Up&UP)’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가운데 네 멤버는 어깨동무를 한 채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관객이다. 정말 굉장한 밤”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틴은 공연장 바닥과 태극기에 입맞춤하며 “갓 블레스 유”라고 읊조렸다.

20년 넘게 변함없는 우정을 자랑하는 콜드플레이. 왼쪽부터 가이 베리맨, 크리스 마틴, 윌 팸피언, 조니 버클랜드. [사진 현대카드]

20년 넘게 변함없는 우정을 자랑하는 콜드플레이. 왼쪽부터 가이 베리맨, 크리스 마틴, 윌 팸피언, 조니 버클랜드. [사진 현대카드]

1996년 런던대 기숙사에서 처음 만나 98년 밴드를 결성한 이들은 7장의 정규 앨범으로 80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여타 록밴드가 해체와 재결성, 혹은 멤버 교체가 잦은 반면 이들은 20여 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하면서 브릿 어워드(9회)와 그래미 어워드(7회)에서 연거푸 수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브릿 팝과 일렉트로닉 팝 등 넓어진 음악 장르와 함께 심오한 가사의 철학적 깊이도 깊어지면서 ‘포스트 라디오헤드’ 같은 수식어도 저절로 떨어져나갔다. 향후 앨범 계획이나 앞으로 여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마틴의 대답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노래했지만 점점 외적인 것 못지 않게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됐죠. 20대 청년에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4~5년 전부터 시인 루미나 철학자 빅터 프랭클의 책을 즐겨 읽는데 항상 새로운 스승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오늘처럼 큰 무대에 서면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 같고 자만하기 쉽지만 오케스트라나 발레 공연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니까요. 새로 음악 작업을 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이 녹아든 결과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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