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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떡ㆍ오징어순대…투박한 감칠맛에 침이 꿀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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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호 24면

메밀전병

메밀전병

강원도의 향토음식으로 유명한 감자떡은 원래 구황(救荒)식품이었다. 산골의 길고 긴 겨울, 먹을 것이 떨어진 사람들은 곳간에 쟁여두였던 감자를 갈아 주물주물 떡을 빚어 허기를 달랬다. 요즘 감자떡은 쫄깃쫄깃한 식감과 낮은 칼로리로 도시인들에게 환영받는 음식이 됐다. 고랭지에서 재배한 배추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기름에 지진 배추전, 작은 오징어에 각종 재료를 넣어 푹푹 쪄낸 오징어순대도 그렇다. 투박하고 단순한 맛 속에 건강과 멋이 듬뿍 담겼다.

국립민속박물관, ‘봄놀이-산 꽃 밥’ 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강원도의 정취와 멋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함께 준비한 한식문화특별전 ‘봄놀이-산 꽃 밥’ 전(展)이다. 올림픽 개막 300일 전(G-300)인 15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과 야외전시장 오촌댁에서 6월 20일까지 계속된다. 봄 내음 가득한 강원도의 산과 자연, 그 안에서 피어난 음식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석이버섯 능이버섯

석이버섯 능이버섯

강원도는 ‘산’의 고장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선 가리왕산 봉우리들을 유유자적 넘나드는 구름의 영상이 한쪽 벽 가득 펼쳐져 있다. 반대편 벽에 걸린 사진가 민병헌의 ‘태백풍경’과 구본창의 ‘금강산’ 풍경에 눈이 절로 시원해진다.

코너를 돌면 ‘꽃’이다. 지루했던 겨울이 끝나고 강원도 산골까지 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도시락을 챙겨 산으로 들로 꽃구경을 나선다. 옛날 사람들은 봄놀이를 갈 때 고리버들을 엮어 만든 도시락을 애용했다. 전시장에는 민속박물관이 소장한 고리버들 도시락과 대오리(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것) 고리짝 등의 유물이 등장한다. 그 옆으로 도예가 안시성의 옹기합, 이헌정의 그릇 등이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설악산 화가’로 유명한 김종학의 꽃그림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 그릇들의 자태가 마치 봄소풍 나온 대가족의 한상 차림같다.

강원도의 밥상은 ‘원반’으로 불리는 독특한 형태다. 나무를 통째로 돌려깎기해 둥근 상다리를 만들고 거기에 동그란 원판을 얹었다. 전시에는 이 원반을 소재로 하지훈 계원예술대 교수가 만든 가구작품 ‘라운드 반(Round Ban)’ 등이 소개된다. 전시 감독을 맡은 ‘박여숙 화랑’의 박여숙 대표는 “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30여 점과 현대 공예작가 23명의 작품을 함께 놓았는데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전통 공예의 고유성을 지켜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별미 여기 다 모였네

전시 주인공은 ‘밥’이다. 전시장 한 가운데 둥글게 차려져 있는 강원도의 별미 음식들은 모형인데도 어찌나 생생한 지 침이 꿀꺽 넘어간다.

한국요리연구가인 이종국 셰프가 고른 10개의 요리에는 강원도의 자연이 숨쉬고 있다. 메밀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메밀을 이용한 냉면과 막국수, 전병이 예로부터 유명했고, 여름철 산간 지방에서 많이 나는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반죽해 가락을 뽑아낸 올챙이 국수도 강원도의 별미였다. 걸쭉한 반죽을 구멍 뚫린 바가지에 내리면 방울방울 떨어지는 덩어리가 올챙이 모양 같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올챙이 묵이라고도 한다.

높은 산에서만 자라는 식물인 수리취의 어린 잎을 쌀과 함께 찐 수리취떡은 강원도 사람들이 단오에 먹는 세시음식이었다. 강원도는 산에서 뜯은 약초를 달여 마시는 약차로도 유명하다. 옹기 장인 이현배가 만든 약탕기에는 향기로운 약초가 그득하게 담겼다.

바다가 있는 지역이라 해산물 요리도 풍부하다. 가자미식해는 싱싱한 가자미가 잡히는 해안 지역에서 저장해 두고 겨울 내내 먹는 발효식품이다. 가자미와 조밥, 양념 등을 섞어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아 3~4일 따뜻한 곳에서 삭힌 음식이다. 강원도 횡계의 덕장에서 얼렸다 말렸다를 반복한 황태로 만든 황태식해도 이 지역 명물이다. 이종국 셰프는 “강원도 음식이 맛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투박하고 단순한 맛이 무엇보다 큰 매력이다. 그만큼 영양도 뛰어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적극 권할만하다”고 했다.

지천에 나무가 널린 강원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릇도, 주방 기구도 나무로 만들었다. 전시장 한쪽에는 강원도의 옛 부엌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방이 있는데, 나무를 깎아 만든 목기, 국수를 뽑아내는 데 쓰인 목재 국수틀, 쌀을 보관하는 나무 뒤주 등이 놓여 있다. 기량 국립민속박물관 전시과장은 “주로 나무와 돌로 만든 강원도의 옛 식기나 주방용품들은 대부분 둔탁하고 질박하다. 하지만 실용성을 살린 심플한 디자인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라고 설명했다. 부엌 선반에 놓인, 돌을 동글동글하게 깎아 만든 곱돌냄비와 곱돌솥의 산뜻한 자태를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감으로 느끼는 강원도의 멋

이현배의 약차

이현배의 약차

야외 한옥 전시장인 오촌댁으로 발길을 옮긴다. 한옥 문 앞에 거대한 무가 뿌리를 박고 서 있다. 진짜 무는 아니다.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작품이다. 내일 김장을 앞둔 듯, 사랑 대청에는 배추가 가득 쌓여 있다. 부엌으로 가 보니 덜 치운 밥상들이 층을 이룬 ‘밥상탑’이 있다. 찬방에는 현대적인 전시작품 ‘알캐미(Alchemy)’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린이들은 인터랙티브 영상으로 강원도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하는 한식 미디어테이블 주위에 가득 모여 있다. 감자떡을 만들려면 손으로 열심히 감자를 썰어야 한다. 가자미식해는 손으로 주물주물 무쳐야 한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감자 반죽이 감자떡이 되고, 바다를 뛰놀던 오징어가 속이 꽉 찬 오징어 순대가 돼 식탁에 오른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강원도의 봄에 녹아있는 식문화를 오감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전시로 만들려 했다. 강원도 산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눈으로 감상하고, 물과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영상을 통해 음식을 만들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매주 토요일에는 강원도 지역 명인들과 함께 수리취떡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전시는 무료.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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