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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미녀보다 엠마, 엠마 왓슨 매력 탐구

중앙일보

입력

실사판 ‘미녀와 야수’(원제 Beauty And The Beast, 3월 16일 개봉, 빌 콘돈 감독)의 전 세계 극장 수입이 9억 7000달러(1조 262억원)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라면 최근 디즈니 프린세스 영화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던 ‘겨울왕국’(2013,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의 기록(12억 7000만 달러)을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460만 관객을 돌파하며 4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이미 22년 전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 소비한 것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이 같은 환호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풍의 한가운데엔 벨을 연기한 엠마 왓슨(27)이 있다. 오색찬란한 영상미와 추억 소환 코드도 한 몫 했지만, 엠마표 벨은 단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만인의 헤르미온느에서 페미니스트 인권 운동가로 변신한 왓슨의 야심 찬 컴백작. 그의 매력은 이 영화에 어떻게 투영됐을까.

사진: (AP=뉴시스)

사진: (AP=뉴시스)

엠마표 21세기 벨

“벨이 애니메이션보다 조금 더 현대적인 버전이길 바랐다. 사실 벨의 DNA엔 진보의 기질이 있다. ‘반항적인 디즈니 프린세스’라고 할까.”

‘미녀와 야수’의 개봉을 앞두고 엠마 왓슨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199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게리 트러스데일·커크 와이즈 감독)의 벨(페이지 오하라)은 디즈니 프린세스 계보에서 확실히 튀는 존재였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책 읽기와 공상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줄 아는 여성이었으니까. 디즈니 프린세스가,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 데이비드 핸드 감독)에서 왕자 따윈 필요 없는 모험왕 ‘모아나’(1월 12일 개봉,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 감독)로 거듭나기까지 벨은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페미니스트인 왓슨이 4년 전 신데렐라 역은 거절하면서, 벨은 수락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벨의 진취적인 DNA에 동질감을 느꼈고, 함께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 그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녀와 야수’ 촬영을 마쳤을 때 스크린에서 어른 여성으로 보여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벨은 디즈니 프린세스지만 수동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책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실사판 ‘미녀와 야수’는 큰 틀에서 애니메이션과 비슷하나, 디테일로 들어가면 많은 것이 다르다. 야수(댄 스티븐스)가 조심성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물로 변모했다면 벨은 조금 더 능동적이고 와일드하게 그려진다. 예컨대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농간으로 벨과 아버지(케빈 클라인)가 마차에 갇힌 순간을 떠올려보자. 애니메이션에선 찻잔 칩(브래들리 피어스)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반면, 실사판에선 부녀가 기지를 발휘해 스스로 탈출한다. 왓슨은 21세기 버전의 벨을 보여주기 위해 겉모습부터 성격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벨 역의 엠마왓슨(왼) 빌 콘돈 감독(가운데)

벨 역의 엠마왓슨(왼) 빌 콘돈 감독(가운데)

인권 운동가로 활동 중인 왓슨의 평소 이미지도 벨을 달라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한다. UN 여성 친선 대사로서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혀 온 그의 활동가적 성향이 벨에 그대로 옮겨간 것처럼 보이는 것. 어떤 장면에서 왓슨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자기 자신처럼 보인다.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통해 세상을 읽는 벨은 왓슨의 실제 모습 그대로다. 배우와 배역의 완벽한 상승 작용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까.

물론 벨을 향한 비판도 있다. 결국 잘생긴 왕자를 만나 신분 상승하는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비판이다. 정작 왓슨은 괘념하지 않아 보인다. 페미니스트에게 덧씌운 고정 관념을 탈피하며 여성의 다양성을 얘기해 온 왓슨이었으니까. 최근 그는 토플리스 차림으로 화보를 찍고 나서 “커리어에 가슴을 이용한 반(反)페미니스트”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에 대한 왓슨의 반박은 실로 명쾌하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선택권에 대한 것이다. 자유와 해방, 평등을 말한다. 그것이 내 가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잡지 ‘베니티 페어’에 따르면 왓슨은 여성학계의 대부이자 친구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미녀와 야수’를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스타이넘은 “왓슨의 평소 신념과 행동이 영화에 잘 반영된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고 답했다. 벨의 아버지로 출연한 배우 케빈 클라인의 평도 흥미롭다. “흔히 페미니스트라면 진지할 것 같지만, 페미니스트도 여성스럽고 섬세하고 약하고 사랑스러우면서 동시에 진지할 수 있다. 엠마는 그런 점에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시대가 원하는 여성
왓슨은 우리 모두의 헤르미온느였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로 데뷔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가장 먼저 손을 드는 모범생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공부와 인정(認定)에 대한 이글거리는 열망을 가진 괴짜 소녀였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에 똘망똘망한 눈, 똑부러지는 말투로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헤르미온느가 원작 소설을 뛰쳐 나왔다며 좋아했었다.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와 3인조를 이뤄 온갖 고난과 모험을 헤쳐 가면서 헤르미온느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 시절 헤르미온느는 용감하고 똑똑한 소녀들의 친구이자 우상이었다. 10년간 총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2001~2011)에 출연하며 왓슨은 어느덧 20대가 됐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와 돌

해리포터와 마법사와 돌

왓슨은 이 시리즈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갓 성인이 된 젊은 배우가 일생 동안 극복해야 할 커리어이기도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고, 스토커에도 시달렸다.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천성적으로 연기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는 요가와 명상을 통해 자신을 다스렸다. 대형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작품 대신 작은 영화에 출연했다. 낭만과 고독, 사랑이 교차하는 청춘 스케치 ‘월플라워’(2012,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물질이란 허상을 좇는 반항아들의 이야기 ‘블링 링’(2013, 소피아 코폴라 감독) 등이 그때 선택한 영화들이다.

영화 '월플라워'의 샘(엠마 왓슨).

영화 '월플라워'의 샘(엠마 왓슨).

2014년 UN 연설은 왓슨의 인생에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양성평등을 지지하는 여성 인권 신장 캠페인 ‘히포쉬(HeForShe)’를 런칭하는 행사에서 처음 연설을 했다. 그는 “여성의 권리 투쟁은 남성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다”라고 말해 많은 이에게 영감과 자극을 줬다.

왓슨은 지난해 1년을 안식년으로 삼고 공부와 자아 발전에 매진했다. 페미니스트 북 클럽을 만들어 매월 책을 추천하고 토론도 시작했다. 북클럽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14만5000명에 달하며 이들은 하루에도 몇 건씩 책을 읽었다는 인증 사진을 올린다. 스타이넘이나 벨 훅스 등 유명 여성학자도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를 읽어보면 매주 한 권의 책을 독파하는 왓슨의 지성과 통찰을 느낄 수 있다. 벨 훅스와의 대담에서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시기를 지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 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되어 주려 한다.

사진=엠마 왓슨 인스타그램

사진=엠마 왓슨 인스타그램

여느 20대 여성 배우가 가지 않은 길을 맹렬히 걷고 있는 왓슨은 이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영웅처럼 보인다. 이미 많은 청소년이 그를 롤모델로 꼽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미녀와 야수’의 성공은 그래서 의미 있다. 흔치 않은 페미니스트 배우로서 그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계속 존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엠마표 벨은 무엇이 다른가?>

1 생활력 갑 
애니메이션 속 벨은 하늘색 원피스에 플랫 슈즈를 신고 사뿐사뿐 걷는다. 반면 실사판 벨은 훨씬 와일드하고 생활력이 강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살림도 하고 일도 하기 때문에 코르셋은 벗고 구두 대신 가죽 워커를 신었다. 치마에 공구 벨트 같은 주머니를 달아 실용성도 살렸다. 속바지가 보이는 것은 아랑곳않고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모습도 원작에선 못 본 것이다.

미녀와 야수.

미녀와 야수.


2 발명왕
발명가 아버지를 돕기만 했던 벨은 실사판에서 직접 발명을 하는 창작자로 거듭난다. 빨래를 담은 통을 당나귀의 힘으로 돌게 해 세탁을 하는 ‘아날로그 통돌이 세탁기’를 만들었다.

3 여성 전사라 해도 되겠네 
엠마표 벨은 더 용감하다. 야수의 성에 갇혔을 때 애니메이션 벨은 내내 눈물을 흘린다. 반면 실사판 벨은 울지 않는다. 대신 야수의 부당한 행동에 화를 내고 항의한다. 창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드레스를 입히려는 옷장(오드라 맥도날드)에게 “난 공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들어갔다.

4 벨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실사판 벨은 더 입체적이다. 애니메이션엔 없던 과거사를 추가했기 때문. 빌 콘돈 감독은 벨에게 자유롭고 똑똑한 파리지앵 엄마가 있었다고 설정했다. 그걸 물려받았기에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서 호기심 많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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