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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투어 완전 매진...北관광에 대북 제재 영향 없어"

중앙일보

입력

루파인 트래블의 딜런 해리스(왼쪽) 대표.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루파인 트래블 제공]

루파인 트래블의 딜런 해리스(왼쪽) 대표.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루파인 트래블 제공]

‘태양절(김일성 생일, 4월 15일)’을 앞둔 지난 13일, 한 단체 관광객이 북한에 입국했다.
영국의 여행사 ‘루파인 트래블(Lupine Travel)’이 기획한 ‘김일성 생일 투어’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중국 단둥에서 기차로 입국해 5박 7일 일정으로 평양, 묘향산, 개성과 판문점을 여행한다. 평양의 개선문과 학생소년궁전, 묘향산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보현사 등은 이 여행사가 매달 진행하는 다른 상품에도 포함된 일정이다. 
하지만 ‘태양절’ 당일 현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김일성 생일 투어’만의 경쟁력. 여행사 홈페이지엔 “김일성 생일인 15일에 김일성 만경대 생가와 그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한다. 광장에서 열리는 대축제에 참여해 현지인과 대화하고 춤도 출 수 있다”고 소개돼있다. 이 상품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루파인 트래블’의 딜런 해리스(38) 대표는 “김일성 생일은 가장 인기 있는, 북한 여행의 성수기”라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한 루파인 여행사 가이드 제임스 피너티(가운데). 양쪽 두 사람은 뉴질랜드에서 열린 대회 참가 뒤 귀국 중인 북한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이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지난 12일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한 루파인 여행사 가이드 제임스 피너티(가운데). 양쪽 두 사람은 뉴질랜드에서 열린 대회 참가 뒤 귀국 중인 북한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이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북한 여행을 취급하는 여행사가 여럿이지만 ‘루파인 트래블’은 좀 특별하다.
북한을 필두로 여행이나 휴가와는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행지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수단·시에라리온·에리트레아·체르노빌…. 지금껏 이들이 여행한 지역이다. 
대체 왜 ‘루파인 트래블’은 전쟁·내전·재난을 겪은 비극적 장소만 찾아가는 걸까.
‘김일성 생일 투어’ 직전 해리스 대표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英 '루파인 트래블' 딜런 해리스 대표 #만경대 방문 등 '태양절' 분위기 만끽 #조국해방 투어,노동당 창건 투어 등 #내년까지 북한 여행 상품 매달 진행 # 이라크·수단·체르노빌 여행상품도 #"위험해보이지만 절대 안전한 곳 # 남들이 못해 본 독특한 경험 가능"

-전세계가 북한을 압박 중인데, 북한 여행엔 영향이 없나.
“관광에 대한 제재는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북제재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고객은 매년 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도 그는 “3개월 동안 예약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며 “한반도 긴장 고조가 여행 취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북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우려하는 한 가지는 다른 외국인이 북한에서 체포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루파인 트래블’은 홈페이지를 통해 내년까지 일정을 공지하고 예약을 받고 있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8월엔 ‘조국 해방 기념투어’, 9월엔 ‘북한 정권 수립 기념투어’, 10월엔 ‘노동당 창건 기념투어’를 떠난다. 내년 2월엔 ‘김정일 생일 투어’가 계획돼 있다. 
2011년부터 ‘루파인 트래블’이 개최 중인 외국인 참여 아마추어 골프대회 상품도 있다. ‘북한 아마추어 골프 오픈’이다. 해리스 대표를 유명하게 만들고, 회사를 성장시킨 기획이다. 
그는 2013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북한이 루파인 트래블의 미래”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2015년 평양오픈투어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평양골프장에서 라운딩 중이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평양오픈투어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평양골프장에서 라운딩 중이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지난해 10월 평양오픈투어 중. 평양골프장은 결혼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지난해 10월 평양오픈투어 중. 평양골프장은 결혼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9월 개성 청년공원에서 북한 어린이와 범퍼카를 타는 여행객.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9월 개성 청년공원에서 북한 어린이와 범퍼카를 타는 여행객.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세상엔 좋은 골프장이 많은데, 북한 골프투어 매력은 뭘까.
“평양골프장은 평양에서 27㎞ 떨어진 태성호(湖) 인근에 있다. 코스가 정말 아름다워서 북한 커플에게 결혼사진 촬영지로 인기있을 정도다. 보통 남포에 사는 18~21세 여성들이 캐디를 하는데, 라운딩하는 3일 내내 함께 있기도 한다. 골퍼들이 북한 사람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북한을 여러 번 다녀왔을 텐데,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
“스무 번 넘게 다녀왔다. 방문할 때마다 강한 인상을 주는 건 역시 사람이다.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치를 배제하면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다. 북한 사람들도 꿈과 희망을 말하고, 고민을 나눈다. 사랑에 대해, 가족에 대해 얘기한다. 다만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통일을 얘기하더라.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을 열망하고, 정부가 통일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갈수록 통일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외부에서 볼 때마다, 북한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가 안타깝다”

2015년 체르노빌 투어. 사고 30여년 만에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가 안전한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단체 관광객들의 이 지역 진입을 허가하고 있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체르노빌 투어. 사고 30여년 만에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가 안전한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단체 관광객들의 이 지역 진입을 허가하고 있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체르노빌 투어.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 포함돼 있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체르노빌 투어.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 포함돼 있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체르노빌 투어.해리스 대표는 "체르노빌은 1986년에 멈췄다"며 "모든 게 정지한 가운데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말했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2015년 체르노빌 투어.해리스 대표는 "체르노빌은 1986년에 멈췄다"며 "모든 게 정지한 가운데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말했다.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북한 외의 다른 여행지도 독특하다. 어쩌다 이런 여행사를 차렸나.
“원래 음악 공연·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했다. 사업 특성상 여행을 많이 했는데, 전형적인 여행지가 질리더라. 2007년 동유럽에서 북한까지 기차여행을 할 때 새로운 여행 사업이 떠올랐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여행하는 것이 매우 특별한 경험인데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위험해 보인다. ‘재난 여행’‘익스트림 투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안전한 곳들이다. 이라크의 경우 여전히 전쟁터라고 여겨지지만, 우리가 가는 쿠르드 지역은 최근 수년 간 완전히 안전이 지켜졌다. 진짜 전쟁터는 시리아나 예멘 같은 곳이다. 우리는 충분히 안전해지기 전에는 어디도 가지 않는다”

-준비가 복잡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비자 발급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준비는 우리가 해 준다. 경비도 전부 비싸진 않다. 지난해 체르노빌 투어의 경우 가장 저렴한 상품 가격이 140달러(약 16만원)였다”
‘김일성 생일 투어’의 경우 단둥~평양 왕복 기차요금, 북한 내에서의 숙박·식사 등 각종 비용, 가이드 경비까지 749파운드(약 107만원)이었다. 일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북한 단체관광의 경우 600~700파운드 대에서 가능하다.  

지난 2월 수단 여행 중 촬영한 사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메로에의 피라미드.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지난 2월 수단 여행 중 촬영한 사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메로에의 피라미드.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올해 초 떠난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여행 중 촬영한 사진.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올해 초 떠난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여행 중 촬영한 사진. [루파인 트래블 페이스북]

-여행객들의 달라진 욕구를 반영한 건가.
“우리 상품을 원하는 큰 시장이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고객이 늘고 있다. 지난 10년 새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가 생긴 것이 큰 도움을 줬다고 본다. 실제 고객 대부분이 소셜미디어 입소문을 통해 우리를 알고 온다.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도 한때는 유럽인에게 무척 이국적이고 특이한 여행지였다. 지금은 수없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지 않았나. 사람들은 새로운 장소와 경험을 원한다.”


-고객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왜 이런 여행을 할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18세부터 87세까지 나이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호기심으로 여행하고,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도 있다. 사진 취미를 가진 고객들은 남다른 사진을 찍고 싶어서 우리와 여행을 한다”

-본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는 어디였나.
“100개 넘는 나라를 다녔다. 굳이 꼽는다면 이란·아이슬란드·쿠바·보스니아가 좋았다. 최고의 경험은 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나온다. 지난해 한국에 처음 갔는데, 고향인 맨체스터의 축구팀 위건의 티셔츠를 입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었다. 위건은 영국에서 아주 작은 도시인데 사람들이 위건을 알고, 축구팀을 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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