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가구 단지에 중학교 못 세워 … 35분 걸어 등교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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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0차로 안 건너고 학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 시민 50여 명이 이 같은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서울 송파구의 재건축아파트 단지인 헬리오시티(옛 가락시영아파트) 입주 예정자다. 헬리오시티는 모두 9510가구 규모의 ‘매머드급’ 단지다. 내년 말 입주가 시작된다. 입주 예정자들의 요구는 여기에 중학교를 세울 수 있게 교육부가 허가해 달라는 것이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도 이 단지 안에 중학교 신설계획을 세우고 지난해 교육부에 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헬리오시티에 새 학교를 지으려면 주변 학교를 폐교하거나 통폐합해야 한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정세일 강동송파교육지원청 학생배치담당은 “지방 소도시면 몰라도 인구 밀집 지역인 송파구에선 폐교나 통폐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 학교총량제 이유로 불허 #“학생 수 감소 … 무작정 신설 안 돼” #교총 “교육 서비스 차원서 허용해야”

이처럼 전국의 신도시나 대규모 재건축 지역에서 학교 신설을 둘러싼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구로구 항동 주택개발지구엔 내년 말까지 아파트 등 5000여 가구의 주택이 들어선다. 지역 교육청이 지난 2년간 중학교 신설계획을 4번 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올해 다섯 번째 계획을 낼 예정이다. 학교가 새로 생기지 않으면 항동 지구 중학생들은 어른 걸음으로 30~40분 떨어진 중학교에 배정받아야 한다.

올해 교육부에 접수된 학교 신설계획은 총 77건. 교육부는 중앙투자심사위원회 검토를 거쳐 이르면 다음주 중 이들 계획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 4월 전국 78개 신설 학교 계획 중 12곳만 승인되고 10곳은 조건부 승인을 받아 통과율이 28%에 그쳤다. 천범산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과장은 “예전엔 통과율이 60~70% 정도 됐지만 최근 2~3년 사이 30% 안팎으로 떨어졌다”며 “저출산 등의 여파로 학생 수가 계속 줄 것으로 전망되는데 정부가 학교 신설을 무작정 허용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새 학교를 지으려면 다른 학교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논리를 ‘학교 총량제’라고 한다. 정부가 학교의 총량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국가가 보편적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학교 신설을 너무 억제해선 안 된다. 교육부가 국토교통부나 행정자치부 등과 함께 학교 수요 예측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서·정현진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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