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양의무제 폐지보다 딱한 노인 구제가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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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대선에서 안보·경제 등의 큰 이슈에 묻혀 복지 공약이 크게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래도 시대 정신에 영향을 미칠 만한 공약이 있다. 대표적인 게 부양의무자 제도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부모)가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초과하면 노부모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더라도 정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번 대선에 나선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성 후보가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단계적 폐지다. 넷 중 누가 되더라도 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제도를 시행할 때 도입됐다. 당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고 그걸 법률에 반영했다. 그 무렵만 해도 71%가 자식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여겼으나 지금은 31%에 불과하다. 세태 변화에 따라 부양의무자 범위에서 손자와 형제·자매, 홀로 남은 사위·며느리를 제외했다. 이제는 부모-자식만 남았다.

이 제도 때문에 117만 명의 극빈층이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 사교육비에다 높은 주거비 등을 감안하면 자식 가구도 부모를 부양하기 빠듯한 게 현실이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의 부양기피나 거부를 입증하거나 속살 같은 가정사를 드러내야 하는데 이게 부담스러워 포기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사회권 침해라고 지적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 우선 예산(연 10조원)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이보다는 우리 사회의 효 의식을 더 빨리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급속한 고령화를 고려하면 가능하면 가족 부양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이웃 일본은 형제·자매까지 부양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평균수명 연장에 따라 100세 부모를 모시는 자녀 노인, 중증 장애인 자녀를 둔 60대 이상 고령자의 부양 의무를 먼저 면제하는 게 맞다. 부자의 관계 단절 입증 절차를 더 간소화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