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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결제한도 폐지, 국산게임 역차별 족쇄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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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목동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병인 씨는 게임 마니아다. 최근 롤플레잉 게임(RPG)에 빠지면서 게임 아이템을 사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금빛 갑옷과 무기를 사려고 했는데 ‘월 50만원 결제 한도’에 막혔다. 김 씨는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인데 결제 한도 내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건 코미디”라고 말했다. 김 씨는 결국 일주일 정도 기다려 달이 바뀐 뒤에야 원하는 아이템을 살 수 있었다.

외국게임에 시장 주도권 내준 원인 #아이템 구매 규제 5월부터 없애 #헤비유저 적어 당장 영향 없지만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 마련 기회

다음달부터 이런 ‘온라인 게임 성인 월 결제 한도’가 폐지될 예정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이달 중 외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온라인 게임 성인 월 결제 한도 자율 규제안’을 확정해 이르면 다음달부터 이를 시행한다고 10일 밝혔다.

자료 :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 한국콘텐츠진흥원

그간 ‘온라인 게임 성인 월 결제 한도’는 국내 게임업계 성장을 막아 온 대표적 규제로 꼽혀왔다. 현재 온라인 게임에서 성인은 한 달 50만원, 청소년은 7만원 이상 결제하지 못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2003년 과소비 억제 취지로 결제 한도를 최초 적용한 후 지금까지 이를 유지해 왔다. 게임물관리위에서 게임 등급을 받지 못하면 아예 서비스를 못 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지켜왔다.

한국게임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소비자의 지출 상한을 정한 것은 게임 업체로 보면 수익 창출 마지노선이 정해진 것과 같다”며 “국내 게임 업체의 덩치가 고만고만한 것엔 이런 규제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 게임을 한곳에 모아 판매하는 ‘스팀’ 같은 업체의 경우 외국에 서버를 둬 규제를 받지 않아 왔기에 그동안의 규제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도 인식됐었다.

실제 규제가 지속하는 동안 국내 온라인 게임 경쟁력은 약해져 왔다. PC방 게임 리서치 업체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PC방 게임 점유율은 외국 게임사가 개발한 리그 오브 레전드(30.79%)·오버워치(23.42%)가 각각 1·2위로, 두 게임의 점유율이 50%를 넘었다.

결제 한도 규제는 성인의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한 소비 영역을 국가기관으로부터 강제당한다는 의미에서다. 외국에서는 정부가 지출 한도를 정한 사례가 없다.

콘솔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에는 없는 결제 한도가 온라인 게임에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도 있어왔다. 예를 들어 콘솔 게임 이용자가 개당 5만원짜리 게임 타이틀을 한 달에 100개 이상 구매해도 제한받지 않는다.

모바일 게임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게임은 이용자 정보와 결제 정보를 사업자가 가지고 있어 결제 한도를 설정할 수 있지만, 콘솔 게임은 이용자 정보와 결제 정보를 알 수 없고, 모바일 게임 결제정보는 통신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제 한도 폐지가 게임사들의 매출에 어떤 효과를 미칠까. 당장 매출 증대 효과는 당장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이투자증권 김민정 연구원은 “월 50만원 이상 게임에 소비하는 이른바 ‘헤비유저’가 많지 않아 규제가 폐지돼도 당장 시장 파이를 키우는 촉매제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게임 산업에 긍정적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전성민 교수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고, 게임사들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이 보장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 기반을 마련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임 업계는 결제 한도 폐지에 대비해 소비자가 본인의 결제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결제 관련 민원을 처리할 기구를 마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강신철 게임산업협회장은 “결제 한도 폐지로 인한 부작용이 없도록 게임업체들이 책임감을 갖고 자율 규제에 나서는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별 기자 ahn.bye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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