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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특파원이 본 미중 회담 결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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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層之臺起於累土 千里之行始於足下” (구층누각도 흙더미로 짓고, 천리길도 발밑에서 시작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6일 저녁(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 노자의 도덕경 구절을 쓴 서예 작품을 선물로 건넸다.

시 주석이 들고간 선물엔 정상 회담에 임하는 그의 전략과 목표가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시 주석은 만찬석상에서도  ”만길 높은 건물도 평지에다 세운다(萬丈高樓平地起)“라고 말했다(인민일보의 9일자 보도).

중국은 이번 회담에 임하면서 구체적인 현안에서 합의를 도출해내기보다는 트럼프-시진핑 시대를 맞은 중ㆍ미 관계의 기본 방향 설정에 중점을 뒀다.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막는 게 당면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적대시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리면서 회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고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통해 대립과 경쟁보다는 협력 파트너로서의 관계 설정을 이끌어내고 시 주석의 외교성과를 부각시켜 올 가을 5년 주기로 열리는 당 대회의 성공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게 중국의 회담 전략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회담은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하는 게 중국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회담은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중국을 국빈방문한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상호이익을 위한 협력의 확대와 상호존중의 기초위에서 이견을 적절히 관리해 나간다”는 양국 관계의 기본 방향은 중국 외교부와 백악관의 공식발표에 나란히 담겼다.

^외교안보 ^전면적 경제대화 ^법집행및 사이버안전 ^사회ㆍ인문교류 등의 고위층 대화기제 출범에 합의한 것은 보다 구체적인 성과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종전의 전략경제대화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를 4개의 고위급 대화기제로 재편한 것은 큰 성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은 양국 공동성명이 없었던 것이나 시리아 공격이란 돌발 변수에 묻혀 회담이 덜 주목받게 된 것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첫술에 배부르랴”는 식이다.

중국의 만족감은 줄곧 미소를 잃지 않았던 시 주석의 표정에서 드러난다.

2015년 국빈방문 당시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것과 사못 대조적이다.
양국간 전면적 경제대화를 통해 미국의 대중적자 완화를 위한 ‘100일 계획’을 수립키로 한 것은 무역전쟁을 원치 않는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양보한 결과다.

이는 90일동안 국가별ㆍ상품별로 미국의 무역적자 구조를 파악하고 반덤핑 관세나 상계관세 강화를 검토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기간과 겹친다.
시 주석은 연초부터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했지만 이번 회담 발표문에선 보호무역 비판을 한 줄도 집어넣지 않았다.

다만 중국측 발표문에는  ‘100일 계획’에 대한 합의가 빠져 있다.
대신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시 주석은 회담석상에서 “미국이 대중 수출 제한을 완화해 한층 무역 균형에 다가가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미국의 첨단기술제품 수출 규제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100일 계획’을 위한 구체적 협상과정에서 미ㆍ중 양국 실무진의 험난한 힘겨루기를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은 만찬 회담 도중 시작된 미국의 전격적인 시리아 공격에 대해서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에는 트럼프가 ‘홍문연(鴻門宴)’을 펼쳤다는 비유도 나왔다. 초나라 항우가 모사 범증의 계략대로 홍문에서 연회를 열고 칼춤을 추며 유방을 해치려 한 고사에 빗댄 것이다.
고사 속 유방은 이를 눈치채고 위기를 모면했다.
이번에 시 주석의 반응은 ”이해한다“는 뜻을 보였다고  미국측이 전한 것 외에 알려진 게 없다.

”이해한다“는 발언으로 미뤄 볼 때 시 주석은 즉석에서 미국의 독자적 행동에 대해 강한 반론을 제시하진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우호적 분위기 연출을 우선시하고 회담이 파국으로 가는 걸 꺼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 원장은 ”시리아 공격이 회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거쳐 군사행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어떤 경우에도 무력 해결이 아닌 평화 해결을 원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결국 시리아 사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차후 안보리 논의 등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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