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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문학

이 경쾌한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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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무슨 문학상 심사 같은 것을 하기 위해 시집과 소설을 키 높이로 쌓아 놓고 보는데 그 작품이 그 작품인 것 같고 그 수준이 그 수준인 것 같아 당황하고 낙담할 때가 적지 않다. 이런 정황에서는 답안지를 선풍기 바람에 날렸다는 어떤 교수의 전설까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다 고만고만하게만 보일 때 끈끈하게 엉켜 붙어 있는 것만 같은 수면을 경쾌하게 깨뜨리고 위로 올라오는 작품이 늘 하나 이상은 있게 마련이다.

김개미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 』

김개미의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같은 시집은 어떤 자리에 끼이건 늘 그런 역할을 한다. 우선 말이 힘차고 경쾌하다. 시에서 이런 문체의 미덕은 진실성에 대한 신뢰를 반은 확보한 것이나 같다. (김수영의 시를 난해시라고 말하고, 그래서 무슨 초현실주의 시라고 여기던 시절에 알아들을 수도 없어도 그 시가 엉터리는 아니란 것을 알게 해 준 것도 그 힘찬 문체였다.) 그런데 훈련이 잘된 육상선수의 몸놀림을 보는 듯한 그 문체가 안고 있는 주제는 ‘불안’이다. 어쩌면 불안만이 경쾌하고 힘찬 문체를 만들어낸다고 말해야 할까. 마음이 불안에 젖어 드는 순간은 최소한 일상의 덤덤한 순간은 아니다. 불안은 그것을 느끼고 바라보기에 따라 머리를 물에 처박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숨을 참는 놀이 같고, 어지러워 쓰러질 때까지 두 팔을 벌리고 뱅글뱅글 도는 장난 같다. 그래서 불안과 초조는 가끔 축복 같을 때가 있다. ‘한여름 동물원’을 읽어보자.

동시도 열심히 쓰고 있는 김개미 시인. 개미는 어릴적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사진 문학동네]

동시도 열심히 쓰고 있는 김개미 시인. 개미는 어릴적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사진 문학동네]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야/안녕,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야/안녕,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야/안녕, 환청에 들뜬 원숭이야/안녕,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야/안녕,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야/안녕,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야/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죽기도 살기도 좋은 날씨란다’

시인은 자신을 압박하는 불안의 형식을 마치 어린이가 장난감을 모으듯 끌어모아 한자리에 나란히 세워 놓는다. (사실 김개미는 이 첫 시집을 내기 전에 동시집을 낸 적도 있다.) 그렇다고 불안과 초조가 장난감일 수는 없다. 가슴의 밑바닥에서 검은 물처럼 차오르는 불안은 어디서 어떤 얼굴을 들고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시인은 시 ‘즐거운 청소’를 이런 말로 끝맺는다. ‘싫어 싫어, 거긴 싫어/이불 밑의 엄마는 하나도 안 궁금해/죽었으면 어쩌려고 자꾸 나보고 보래?’

병을 친구로 삼는다는 말은 있어도 불안을 친구로 삼는다는 말은 없다. 끈질기게 찾아오는 불안과 마주 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불안이 축복일 수도 없다. 불안의 저 검은 얼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를 갉는 그 줄칼에 대해 노래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가 축복이라면 아마도 축복일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은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이지만 이런 제목을 지닌 시는 이 시집에 없다. 물론 시집에 수록된 어떤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를 찾아내는 것도 이 시집을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겠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