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버린 아이들 돌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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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인 혼혈아를 돌보고 있는 가나 서아프리카 선교회의 최용순 목사(가운데).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펠리시아(17), 강이사벨라(12), 최 목사의 부인 김영신씨, 최 목사, 아탐비리 아카마(16), 최프란시스(13), 김복남(12), 이안젤라(16). 아코스(15)는 몸이 아파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다. 박종근 기자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30㎞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 테마. 이곳에서 서아프리카선교회(WAM)를 운영하고 있는 최용순(61) 목사 가족은 일곱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두 명은 검은 피부의 가나인이고, 다섯 명은 갈색 피부에 왠지 친근감을 주는 인상이다. 이들은 한국인 아버지와 가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혼혈아들이다.

이들의 아버지들은 테마를 근거지로 선원으로 일하던 한국인들로 지금은 모두 가나를 떠났다. 아이가 태어나기 하루 전에 한국으로 가버린 비정한 아버지도 있다고 했다. 이들 청소년들은 최 목사 집 근처에서 어머니나 할머니와 함께 산다. 과일이나 샌드위치 행상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 목사는 자비를 들여 이들을 학교에 보내 주고, 주말에는 집으로 불러 함께 지내면서 한국어도 가르친다.

가나 대학교를 졸업한 최 목사의 딸 혜진씨는 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예절 교육도 시킨다. 이들에게 용돈도 준다. 말이 용돈이지 사실상 최저 생계 유지를 위한 지원금이다. 점심값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가나의 학생들은 대부분 아침을 먹지 않고 등교한다. 점심 식사를 사먹을 돈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날 때까지 굶어야 하는 실정이다.

고교 2학년인 이 펠리시아(17)와 이 안젤라(16)는 학업 성적이 탁월한 편이라고 한다. 펠리시아는 간호사, 안젤라는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강 이사벨라(12)의 장래 희망도 의사다. 잘 생기고 의젓한 최 프란시스(13)는 사업가, 막내인 김복남(12)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단다. 복남이는 "아빠(최 목사)를 태워드리기 위해 파일럿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꿈을 자랑스럽게 밝혔다.

1992년 선교를 위해 가나에 온 최 목사는 93년부터 혼혈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교회를 찾아와 '애를 좀 맡아달라'고 간청하는 거예요. 사정을 알아보려고 집에 가 보니 한 아이가 시멘트 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자고 있더라고요. 너무 불쌍해 데려와서 키운 것이 시작이었어요." 첫 정을 준 그 아이는 최 목사 부부가 안식년 휴가를 다녀온 사이 나쁜 친구의 꾐에 빠져 가출해 버렸다. 그 뒤로는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지는 않는다. 다행히 지금 돌보는 아이들은 다들 밝고 건강하게 자라줘 고맙다고 했다.

가나에는 한국계 혼혈아가 6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대부분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산다.

테마(가나)=정영재 기자<jerr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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