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맑은 사월의 여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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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9면

삶과 믿음

사월이면 노란 유채꽃과 눈이 시린 강변바람 그리고 종달새 노랫소리가 좋다. 조용한 봄빛의 하늘을 가로질러 나무 끝 새가 떠난 빈 둥지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붕도 없는 둥지에 새끼들을 키우다 남은 잔 터럭 몇 개가 바람에 나부낄 뿐 아무것도 없는 텅 빔 그대로다.

“어디로 떠났을까” 하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궁금증도 금방 사라진다. 어디론지 떠났겠지 하는 안도의 마음이다. 새는 날개가 있기에 멀리든 또는 가깝게든 훨훨 날아 떠나간다. 우리 마음도 날개를 달아 훌훌 떠나 버린다면 집착이나 욕망은 날개 단 영혼처럼 미련도 후회도 흔적이 없게 되겠지.

지난 겨울 딸이 결혼해 우리 집을 떠난 뒤 새봄이 되어 오랫동안 거실 텔레비전 앞을 차지하였던 앉은뱅이 찻상을 치웠다. 덕분에 거실은 여유가 생겼다. 이어 안방에 쌓아 두었던 책장의 책들도 반절을 정리해 버렸다. 오랜만에 아내의 찬사를 들었다. 속이 시원하다는 칭찬. 수행자들은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정리된 공간이고 정리된 삶이다.

수년 전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할 때 일본 사찰에서 느껴지는 간결함을 공부했다. 물론 한국의 암자에서 느껴지는, 오직 하나밖에 둘을 갖지 않음이 또한 대단한 여유와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물건이 ‘하나 더’ 라는 것이 만족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하나 더’ 이것이 내 마음속에 얼마나 행복지수를 높이게 될까 하고 의문을 품어 오던 중에 올해 하나하나 이렇게 포퍼먼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퇴근해 식당에 여러 사람들과 모인자리에서 봄철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를 가야하는데 집이 안 팔려서 걱정이라던 사람에게 이런 비법을 알려주었다.

내 집이 잘 팔릴 수 있는 비법. 첫째, 집의 잡다한 물건을 치워라. 그렇게 하면 집이 깔끔하게 정돈돼 시각적으로 여유있게 보이고 살고 싶어지게 된다. 둘째, 전기스위치·벽지·전등 등 별로 돈 들이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을 교체하라. 그렇게 하면 하자가 없는 집으로 보여 집에 대해 안심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이 집에 살면서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는 실례를 들어라. 아들이 이 집에서 공부하여 명문대에 합격하고 지금은 장가도 잘 갔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다. 넷째, 차 한 잔을 맛있고 그윽하게 대접하라. 항상 멋지고 품위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암시를 줄 수 있다. 다섯째, 집을 보여주는 주인이 밝고 단순하며 무늬가 적은 옷을 입는다. 그렇게 하면 나도 이 집에 살면 저렇게 우아한 사람이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처럼 단순하게 정리되면 우리의 삶은 편안해지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텅 빔의 여유다. 공간이 비워지면 마음도 비워지고 내 삶도 비워지게 된다. 예전에 우리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 줄 아느냐? 제자들이 가만히 있으니 “그것은 마음을 비운 사람이다. 그 사람은 모든 세상을 다 포용하고 있기에 세상에 걸림이 없는 무서운 사람이다.”

‘벽암록’에 중류(衆流)라는 말이 있다. 상대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선입관적 고정관념이란 뜻이란다. 우리들의 삶은 이 ‘중류’에서 적당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맑은 이치다.

정은광 교무 :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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