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가짜상품에 약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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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손님들은 열이면 열 명이 모두 품질은 따지지 않고 유명브랜드가 붙은 물건을 사갑니다. 50∼80달러 짜리 구치·랑셀·세린느벨트가 18∼25달러밖에 안 한다면 가짜라는 것은 뻔히 알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위해 가짜라도 가져다 팔지 않을 수 없어요.』 서울 이태원상가에서 벨트·가방류를 파는 B상점주인 L여인 (32)은 가짜외제상품을 팔고있는 변명을 겸해 유명브랜드에 약한 고객들의 그릇된 구매성향을 꼬집었다.
동대문 흥인 시장에서 가짜 신발류를 도매하는 J씨(51)얘기도 마찬가지다. 『유명브랜드를 안 붙이면 도대체 안 팔리는데 가짜라도 좋다고 사가면 그만 아니냐』고 말한다.
요즘 우리주변에 가짜 유명상표를 붙인 제품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부쩍 늘었다.
대한상의가 최근 조사한 「모조상품 유통실태」에 따르면 모조상품은 T셔츠·점퍼 등 의류에서 신발류·가방·지갑·넥타이·안경 등에 이르기까지 없는 품목이 없고, 도용대상도 미국·프랑스·일본 등 전 세계의 유명 브랜드가 망라되고 있다.

<생산유통과정>
대부분의 가짜상품제조업자는 종업원5∼10명정도의 영세상. 특히 신발류의 경우 부산에만 3백∼4백개 업체가 몰려있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이들은 대형유통업자들의 주문과 자금지원을 받아 단순제조만 하고있는 것이 일반적인 실정.
여기서 만들어진 제품은 전주가 지정한 사람 또는 전주에게 직접 화물 편으로 부쳐진다. 전주들은 제품을 받아 자기 가게로부터 멀리 떨어진 창고에 은밀히 넣어놓고 소매상·행상·노점상들에게 수요에 맞추어 조금씩 공급하는 수법을 쓰라. 전주와 판매망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연결되어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라벨 생산업자 B씨 (36)는 『수출 나가는 것이니까 빨리 만들어 달라며 선금·원료·샘플까지 대주고 날짜가 되면 즉시 찾아갑니다. 두 번 이상은 절대 안 옵니다』고 밝혔다.
가짜외제상품에 붙이는 라벨·날염·프로킹·자수 등은 크기와 디자인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데 간단한 것은 대개 10원안팎, 복잡한 것은 1백 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요 유통시장을 품목별로 살펴보면 이탈리아 유명상표인 필라는 남대문도깨비시장이나 소공·회현지하상가, 이태원 등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 독일의 아디다스의류는 동평화시장주변에서, 미국의 아놀드파머는 평화·광희·통일시장, 이태원상가, 대구서문시장이 주무대.

<가짜상표 식별법>
판매장소가 백화점이나 전문대리점이 아니고 시장·노점상일 경우 일단상표 자체를 의심하는 게 현명하다. 덤핑이나 재고정리를 내세워 파는 경우는 십중팔구 가짜다. 요즘에는 변두리 주택가나 공단 등에까지 이동판매를 하고 있다.
국내에 기술계약이나 브랜드사용이 전혀 허용되지 않은 상표를 알아두는 것도 속지 않는 방법이다. 샤넬·카르티에·루이비통·랑셀등은 본사에서만 완제품을 팔고 다른 나라와는 상표계약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입품이 아니면 모두 가짜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또 외국상표의 디자인·알파베트를 외어두는 방법도 있다. 요즘에는 유명상표를 흉내내어 알파베트의 한두 글자를 바꾼다든지 상표도안을 약간 변형시키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소비자단체의 전문가들은 가짜상표를 알려면 ▲수입원·판매원·아프터서비스등의 표시사항▲상식적인 수입가격▲영문철자등을 확인하도록 충고하고있다.

<고발사례>
특허청에 따르면 작년 한햇동안 적발된 위반업체는 7백31개. 그중 1백9개 업체가 고발되었다.
가짜 외제상품을 적발하는데는 프랑스특허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모조방지위원회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서울평화시장 C씨의 경우 지난해 7월 서울 변두리에서 르까프·아디다스 등의 상표가 붙은 신발·가방 등을 직접 대량생산, 점포에 쌓아놓고 팔다가 구속까지 된 일이 있다.
고발된 사례 가운데는 가짜상표를 달아 외국에 수출하는 경우조차 적지 않다. 올해 9월초 서울 C·K기업이 루이비통 상표로 가방·의류·핸드백 등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했다가 적발돼 6개월 간 무역업 정지처분을 받은 것이 그 예.

<문제점과 대책>
가짜외제상표는 지난 80년부터 고발건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업체의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어 가짜가 더욱 판을 칠 전망이다. 인가된 외국상표와 가짜의 구별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짜상표는 이미 외국에까지 알려지기 시작, 상표를 도용 당한 외국업체들이 대정부 로비를 통해 통상협력차원에서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자칫 우리나라가 가짜상표의 본거지로 외국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걱정된다.
상공부의 한 관계자는 『가짜상표제조업체가 너무 영세하고 점조직에 묻혀있어 단속이 용이치 않다』고 밝히고 있다. 가짜 외제가 판을 치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몸은 국산, 얼굴은 외제라는 기형적 구매형태는 결국 소비자들의 자각 없이는 추방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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