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9초에 다 팔린 티켓 15분동안 찾아 헤맸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조성진 독주회. 5월 통영 독주회 티켓은 17일 79초 만에 매진됐다. [사진 롯데문화재단]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조성진 독주회. 5월 통영 독주회 티켓은 17일 79초 만에 매진됐다. [사진 롯데문화재단]

 79초라고? 그럴리가. 난 아직도 예매 중인데…. 지금은 17일 오전 10시 14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로고침 중인데, 뭐? 매진이라고? 그것도 1분 19초 만에 이미?
그렇다. 이 이야기는 목표물이 사라져버린 줄도 모르고 15분동안 열심히 노를 저어갔던, 헛된 도전의 이야기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경남 통영 독주회(5월7일) 티켓 온라인 판매에 관한 잔인한 스토리다.
오전 10시 00분. R석 134석, S석 408석을 비롯해 총 972석이 떴다. 오늘 풀린다고 한 자리는 1109석. 예매 전쟁이란 것도 별 거 아니구나. 표 못 샀다는 사람들은 좀 굼뜬 인간들이었나보다. 이제 곧 티켓을 사게 되면 5월 통영에 가야하는데 뭘 타고 갈까. 자가용? 버스? 비행기를 타고 가서 갈아탈까?
이제 좌석 선택만 하면 되는데, 어라, 거의 모든 자리가 흰색이다. 즉, 누군가 다 사갔다. 알파고와 마주앉은 이세돌이 이랬을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진보된 기술을 상대하듯 두려움이 경외감에 섞여든다.
지금은 오전 10시 3분. 2층에 자리 하나가 떴다. 그럼 그렇지, 음악 담당 기자로서 평소 정보를 잘 모아둔 덕이다. 음악회 티켓은 가장 싼 것과 가장 비싼 것부터 팔리고 중간 티켓들이 남는다. 중간 가격 티켓으로 베팅하길 잘했다. 2층이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 지은 공연장이니 소리가 좋겠지. 클릭.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아니 그럼 왜 있다고 한 거지? 엄격한 가정교육이 없었다면 소리를 지를뻔했다. 침착하게 첫 화면으로 돌아가본다. 이럴수가, 갑자기 아주 많은 좌석이 예매 가능하다고 표시돼 있다. 이제 좌석 등급 가릴 처지가 아니다. 아무 거나 일단 누르자.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또 한 번 누르자.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그리고 찾아온 흰 화면. 모든 자리가 다시 팔렸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팝업

인내심을 시험하는 팝업

오전 10시 9분. 모든 등급의 자리를 합쳐서 10장 남았다. 그런데 그 좌석은 도대체 누구의 눈에 보이는 것인가. 착하게 살아온 예매자에게만 보이는 좌석인가? 나에게는 단 한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예매 완료된 것으로 나온다.
나는 악몽 속에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했다. 내 몸은 물 속에 있듯 느리고, 두더지는 약삭 빠르고, 이 게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오전 10시 14분. 모든 좌석 옆에 0이라는 숫자가 아름답게 도열해 있다. 그리고 내 휴대전화의 카카오톡에는 어여쁘게 1이라는 숫자가 떠있다. “79초 만에 매진됐습니다.” 예매 시작 5분 만에 도착했으나 실체 없는 두더지를 쫓느라 보지 못했던 메시지.
“그럴리가 없어요!” 나는 외쳤다. “바로 방금 전까지 좌석이 떴다고요!” 통영국제음악재단 관계자는 방금 암 선고를 내린 의사처럼 타일렀다. “그게요... 이미 자리를 선택한 사람들이 결제하는 동안에는 좌석이 떠 있어요.” 그래도 나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기자다. 물러나면 안된다. “아니, 없었던 좌석도 다시 떴다가 사라지고 그랬다니까요?” 암 선고를 내린 의사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게요... 좌석을 잡았던 사람들이 더 좋은 자리를 잡느라 바꾸면 그 사이에 잠시 뜨곤 해요.”
이런 이야기라면 익숙하다. 하나를 얻은 운좋은 이들은 또 다른 하나도 얻을 정도로 억세게 운이 좋다. 하나도 얻지 못한 이는 끝까지 단 하나도 얻지 못한다. 현실을 받아들일 차례다. 통영국제음악재단 관계자는 전화기 너머 나의 체념을 느낄만큼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근데요, 그렇게 좌석 바꾸다가 결국 둘 다 놓친 사람도 많아요. 지금 여기 우리 사무실에도 있어요.”
나는 승리감에 취한 나머지 패배했을 그 직원을 떠올렸다.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른 채 총을 들고 전장을 누볐던 나와 그 중 누가 더 덜 떨어진 걸까 잠시 가늠해봤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109번이란 승리의 클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똑같은 79초가 왜 이렇게 다른가. 나는 드디어 확실히 알았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잔인할 정도로 상대적이다.
온라인에서 팔지 않고 남겨둔 조성진의 통영 독주회 티켓 200장은 다음 달 1일 오전 10시부터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을에서 오프라인 판매한다.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국내 두번째 독주회다. 서울 독주회에선 연주하지 않았던 드뷔시와 모차르트도 들려준다. 새벽부터 티켓 살 줄을 설만큼 아침잠 없는 청중을 위해서….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피아니스트 조성진 5월 독주회 티켓 구매기 #온라인 판매 시작 79초 만에 매진 #예매 가능으로 나온 좌석 아무리 클릭해봐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