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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손흥민, 공을 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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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해트트릭을 기록한 공을 안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토트넘 홈페이지]

손흥민이 해트트릭을 기록한 공을 안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토트넘 홈페이지]

‘손세이셔널’ 손흥민(25ㆍ토트넘 홋스퍼)이 지난 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밀월 FC와의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8강전에서 세 골(시즌 12,13,14호)을 몰아넣었다. 잉글랜드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첫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다. 원정팀 응원단의 몰상식한 인종차별 구호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요즘 말로 그들에게 ‘참교육을 시연’했다.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은 그라운드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공을 계속 들고 있었다. 유니폼 상의 안에 집어넣어 배를 불룩하게 만들거나, 위로 훌쩍 던져올렸다 받기도 했다. 해트트릭을 완성한 세 번째 골을 넣은 공이었다. 손흥민은 “이 공은 내 책상 위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왜 그 공에 그다지 집착한 것일까. 이유가 있다. A매치나 프로 경기에서는 보통 13개의 공이 사용된다. 주심이 킥오프 할 공을 들고 들어가고, 볼보이 12명이 한 개씩을 들고 경기장을 둘러싼다. 경기 중 터치아웃이나 골아웃이 되면 대부분 공이 바뀐다. 따라서 손흥민이 후반 30분쯤에 해트트릭을 기록했다면 특별한 표시를 하지 않는 한 어떤 공인지 알기 어렵다.

그런데 손흥민이 후반 추가시간이 끝날 무렵 세 번째 골을 넣었고,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렸기 때문에 손흥민은 상대 골문 안에 있는 공을 집어들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손흥민이 해트트릭을 한 것도 행운이었지만(상대 골키퍼가 알을 까 줬다), 그 골이 경기 종료 직전에 터져 ‘오리지널 해트트릭 볼’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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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6일자 중앙SUNDAY ‘스포츠 오디세이’에 나는 ‘그 공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는 글을 썼다.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공들이 어떻게 보관ㆍ관리되고 있는지를 취재했다.

스토리(story)는 히스토리(history)를 만든다. 히스토리는 문화가 되고, 상품이 된다. 눈에 안 보이는 스토리를 완성하는 건 눈에 보이는 ‘물건’이다. 내가 스포츠 유물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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