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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핵 도발 강경 대응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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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성락전 주러시아 대사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위성락전 주러시아 대사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도발을 가시화함에 따라 북핵 상황은 중요한 국면에 들어섰다. 사태의 시작은 신형 미사일 실험이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최초의 도발이었다. 이어 김정남 암살 사건이 터졌다. 미국은 북한 외무성 국장의 뉴욕 트랙2 회의 비자 거부로 대응했다. 강도 높은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됐고, 이제 미국은 여러 옵션을 놓고 대북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다시 주일 미군기지를 타격하는 미사일 실험을 했다. 미국의 정책이 강경해질 개연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강경 드라이브 차기 정부엔 족쇄 #북한의 도발은 억제하면서도 #미에 대북정책 속도 조절 권하고 #트럼프와 협상할 여지 남겨야

그간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 향상을 위해 내달려 왔다. 그 겨냥점은 차기 미 행정부와 강화된 입지에서의 담판이다. 미국 대선 때마다 보던 게임인데,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신형 미사일 실험으로 북한식 담판 요청을 내민 셈이다. 앞에서 도발하고 뒤로는 트랙2 회의를 계기로 대미 접촉을 모색해 왔다.

그러므로 북한에 지금은 오래 도모해 온 담판을 탐색하는 막바지 과정이다. 통상 북한은 여기서 여의치 않으면 본격적인 대결 사이클을 시작한다. 그러니 지금은 새 사이클의 시작 여부가 결정되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대처가 문제가 된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한국은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미국에 대해 징벌이나 대화 하나만을 고집스레 주문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간 제재 압박을 주창하던 한국은 이제 미·북 접촉을 반대하고 테러 지원국 부각, 국제기구에서의 자격 박탈 등 강성 주문을 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대증적 접근으로, 전략·전술적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지금이 새로운 사이클로 넘어갈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 내 과도기 대통령대행 체제의 대응이 향후 한·미 간 정책 엇박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결정 국면에 대해서다. 본래 미국은 북한식 담판 시도에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미국에 강성 주문을 내면 미국이 호응할 개연성은 커진다. 이럴 경우 첫 번째 우려는 지금과 같은 결정 국면에서 미국이 강성으로 일관하면 상호 대응이 이어져 대결과 정체가 오래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유사 상황을 오바마 행정부 8년간 본 바 있다. 동일한 대응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니 트럼프 4년간 같은 일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재 압박과 함께 접촉도 하면서 차후의 강온 수순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술이다. 한국이 더 이상 미·북 접촉을 막지 않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또 이런 접근은 중국을 견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을 발표했다. 바로 북한은 중국을 미국의 장단에 춤추는 대국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이 한·미의 정책 노선에 호응하는 시점에 중국의 요망사항인 미·북 대화에 부응하는 모양은 나쁘지 않다. 중국 견인은 상황 타개를 위한 관건인 만큼 유연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우려는 우리의 강경 주문이 예기치 않게 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상황에 끌려 군사 옵션까지 고려하게 되면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던 제재 압박을 뛰어넘는 일이 된다. 1994년 1차 핵 위기 때 한국은 미국에 강경책을 주문하다가 정작 미국이 군사 옵션을 고려하자 극구 만류로 급선회한 적이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불가측성도 감안해 미국을 부추기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재고할 문제가 김정남 암살이다. 이 사건은 북한이 벌여온 북핵 게임과는 별개의 돌출 사안으로 보인다. 그것이 김정은의 지시 때문인지, 충성 경쟁 때문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북핵과 관련된 대미·대남 전술의 일부는 아니다. 물론 이 사건이 북한의 테러이고 화학무기 금지 명분상 심각한 문제지만, 이것을 북핵 강경 드라이브에 섞는 것이 현실적인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테러 모자를 다시 쓰면 외교가 작동할 공간은 상당 기간 없어질 수 있다.

이제 과도기 대행 체제의 문제를 보자. 한국 정국은 과도기이고 머지않아 새 정부가 들어선다. 과도기 대행 체제는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연결에 치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세 번째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검토하는 시점에서 과도기 한국 정부의 강성 주문이 차기 정부 입지를 제약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강경으로 선회하면 향후 한·미 정책 조율이 난항에 빠질 수 있는데, 대행 체제에 그럴 권한이나 위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조치에 집중하면서 미국에 차기 정부 등장 때까지 대북 정책의 정도와 속도를 조절하라고 권해야 한다. 미국도 조만간 한국에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정책 옵션의 일부는 차기 한국 정부와 협의할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요컨대 북한의 도발이 혐오스럽더라도 현 국면에서는 냉철한 전략·전술적 고려가 요구된다. 중요하고 미묘한 상황에서 대증적 강성 대응은 우려 대상이 된다. 과도기의 정부가 그렇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