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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전철, 버스 정류장 … 생활 속에 파고든 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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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500권의 책이 있는 경의·중앙선 ‘독서바람 열차’. [사진 파주시]

500권의 책이 있는 경의·중앙선 ‘독서바람 열차’.[사진 파주시]

경기도 파주시는 경의·중앙선 열차 안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열차에 머무는 시간에 책을 읽도록 하자는 취지다.

파주 경의·중앙선에 ‘독서 열차’ #춘천·부산·동해 등 ‘정류장 책방’ #버스 타기 전 빌리고 내릴 때 반납 #문화부는 ‘e북 지하철’ 내년 추진 #전문가 “주제별 특화, 책 읽기 늘 것”

‘독서바람 열차’ 객실엔 파주·평화·문학·출판 등 4개 주제의 도서 500여권과 전자책 단말기 4대가 있다. 열차 이용객은 파주시 문산역~용문역 구간 124㎞, 2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지난달 23일엔 예비초등학생과 학부모 등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 콘서트가 열렸다. 북 콘서트는 지금까지 12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 열차에서 매달 열리는 북 콘서트 장면. [사진 박진호 기자]

이 열차에서 매달 열리는 북 콘서트 장면.[사진 박진호 기자]

열차 도서관이 호응을 얻자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달 16일 ‘전자책 읽는 지하철(eReading Subway)’ 서비스 사업을 포함한 ‘제4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전자책 읽는 지하철 서비스는 지하철 이용자가 소지한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로 해당 앱을 설치한 뒤 QR코드나 근거리무선통신(NFC)을 이용해 원하는 책을 전송받아 읽는 방식이다. 내년에 추진될 계획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하철에 우선적으로 도입된다.

대학생 김원호(26·강원 춘천시)씨는 버스를 이용할 때 더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얼마 전 동네 버스 정류장에 작은 책 대여공간이 생긴 다음부터다. 그는 “정류장에 가면 항상 15권 정도의 책이 비치돼 있는데, 책을 읽다가 버스가 오면 가지고 탑승해도 된다”면서 “읽던 책은 내리는 정류장에 반납하거나 집에 가져가 마저 읽은 뒤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춘천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정류장 책방.에서 여중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 박진호 기자]

춘천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정류장 책방.에서 여중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사진박진호 기자]

김씨가 이용하는 ‘정류장 책방’은 춘천 지역을 도는 100번 버스 노선(춘천시청∼중앙시장∼남부시장∼춘천지법∼춘천교대∼후평동) 73개 정류장에 설치돼 있다. 명칭은 책방이지만 실제는 15권의 책이 비치된 책꽂이다. 정류장 책방은 춘천시와 책읽기운동본부가 독서인구를 늘리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한 사업이다.

현재 105명의 자원봉사자가 매일 정류장 책방의 시설과 도서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반납이 늦어져 책이 부족하면 이들이 곧바로 보충한다. 2000권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시민의 기증으로 현재 1만3000권이 확보된 상태다. 13일 현재 대여된 책만 2500권이 넘는다.

최용주(61) 책읽기운동본부 운영위원은 “반응이 좋아 태백과 양구를 오가는 시외버스 터미널 승하차장에 정류장 책방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다양한 생활 패턴에 맞춰 도서관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독서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독서인구는 56.2%(2015년)다. 1인당 1년 평균 독서 권수는 9.3권으로 매년 점점 줄고 있다. 이 수치는 1996년부터 20년 동안 8번을 조사했는데 이 기간 최저치다.

독서인구 감소의 돌파구로 최근 인기를 끄는 것은 정류장 도서관이다. 대전시는 요즘 중구 석교동 주민센터 정류장에 ‘정류장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4월 문을 열 예정으로 100여권이 비치된다.

주민으로 구성된 북 큐레이터가 상주해 책을 빌려준다. LED조명과 의자도 설치될 예정이다. 대전충남녹색연합 관계자는 “1년 넘게 주민들과 사업계획을 짜고 회의를 하는 등 정류장 도서관 장소 선정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은 지난해 9월 기장시장입구에 작은 도서관을 개관했다. 이 도서관은 기장시내를 경유하는 모든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주·정차하는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33㎡ 크기의 도서관에는 건강·요리·여행·교양 등 1000여권의 기증도서가 비치됐다. 또 여름과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냉·난방시설과 야외테라스도 갖췄다.

정류장 도서관에 대해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지하철역에 미니 도서관이 설치됐는데, 시민이 지하철역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보니 실제 이용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용주 책읽기운동본부 운영위원은 “최근 설치되는 정류장 도서관은 책을 버스에 가지고 탈 수 있고, 반납이 편리해 지하철 도서관과는 다르다”고 했다.

곽동철 한국도서관협회장은 “선진국의 경우 수퍼마켓, 쇼핑센터 등 다양한 곳에 이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형태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다양한 곳에 주제별로 특화된 도서관이 생기는 것은 독서인구를 증가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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