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딸의 기대 클수록 엄마의 우울함은 커져만 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혜민씨는 살아있다. 하지만 자주 헷갈린다. ‘나는 분명 살아있는 것일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혜민씨는 모르겠다. 숨을 쉬고 있으니 사는 것은 맞다. 물론 숨만 쉬고 있지는 않다. 혜민씨는 회계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직원도 몇 명 데리고 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부러울 것 없는 삶이다. 누군가는 혜민씨를 보고 먹고 살만 하니 드는 고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팍팍한 삶이라면 꿈도 못 꿀 고민이라며 혀를 찰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고민의 뿌리는 깊다. 혜민씨의 젊은 시절, 한치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한 순간에도 혜민씨는 종종 생각했다.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주 딸이 혜민씨에게 던진 말이 자꾸 되새겨진다. “엄마를 보면 자꾸 화가 나. 그런데 그런 내가 나쁜 애 같아. 그래도 화가 나서 미치겠어.” 얘는 왜 이러는 걸까? 내가 이 아이를 화나게 한 일이 있던가? 이혼을 해서? 여느 엄마처럼 집에 있지 않아서? 하지만 일을 한다고 혜민씨가 아이에게 못해준 것은 없다. 직접 사무실을 운영 중이니 미리 계획하면 시간을 뺄 수 있다. 아이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거의 빠지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이 사춘기를 통과하는 여자 아이에겐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고 아이만 겪는 일도 아니다. 부부 사이에 오랜 싸움이 있던 것도 아니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과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챙기는 일과에서 남편의 역할은 없었다. 혜민씨도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자기의 몫이고 안 하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일은 더 피곤할 뿐.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이럴 것이면 따로 살자는 남편의 말에 혜민씨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혜민씨는 실은 딸도 피곤했다. 자신이 낳았으니 책임질 뿐. 이 아이는 너무 요구가 많다. 혜민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수록 딸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자신에겐 어린 시절이랄 것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 어린 시절은 끝이 난 것일까. 실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없다. 혜민씨의 어머니는 혜민씨가 네 살 때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잠시 혜민씨를 맡았다. 아버지는 감당할 능력이 안 되었다고 한다. 2년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재혼을 했고 혜민씨는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보기 어려웠다. 늘 일이 많았다. 쌍둥이 동생이 태어났고 새어머니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힘겨워 늘 지친 표정이었다. 동생들에게 짜증도 자주 냈다. 그럴 때면 혜민씨는 바짝 긴장했다. 새어머니에게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번은 새어머니가 혜민씨에게도 심하게 화를 냈다. 별 일도 아니었다. 아홉 살 때의 일이다. 옷장 위쪽에 보관한 옷을 꺼내려다 팔이 안 닿아 아래에 걸린 옷에 매달리자 옷장 가로대가 무너졌다. 가로대에 걸린 옷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혜민씨 힘으로는 수습할 수가 없었다. 그걸 본 새어머니는 일부러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새엄마라고 욕 안 먹으려고 엄청 노력해 왔는데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는 말. ‘아. 이 사람이 노력했구나.’ 그 날 이후 혜민씨는 결심했다. 아무 것도 느끼지 않겠다고.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그 결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혜민씨는 또래 여느 여자애들과는 달랐다. 노력하고 열심히 살고 스스로 챙겼다. 교사들은 모두 혜민씨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혜민씨는 앞으로만 달렸다.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어느 시점부터는 속내 자체가 없었다. 살아남는 것이, 얼른 어른이 되어서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혜민씨의 유일한 속내였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위험한 일이었다. 슬퍼하다가는 슬픔에 먹혀버릴 수 있다.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혜민씨는 감정을 끊었다. 차라리 느끼지 않아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누구를 원망할 사람도 없다. 아버지도 이해할 수 있고, 새어머니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혜민씨를 구박한 적이 없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지 않은 적도 없다. 그렇다고 병에 걸려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할 수도 없다. 혜민씨는 자기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는데 딸은 자기를 원망한다며 씁쓸해했다. 딸의 말도 원망만은 아니다. 엄마를 원망해야 할지 자기를 탓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엄마가 해주지 않은 것은 없는 듯 한데 왠지 억울하고 뭔가 받지 못한 느낌이 든다. 혜민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기대를 접었던 혜민씨와 달리 딸은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혜민씨는 아홉 살 무렵에 감정을 차단했다.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다. 실은 그 전부터 감정을 차단하고 있었다. 슬픔을 느껴도 슬픔을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헤어짐은 계속 이어졌지만 누구와도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딸의 죽음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기에 손녀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아버지 역시 상처가 적지 않았다.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하에 딸과의 대화를 피했다. 새어머니는 자기 앞에 놓인 의무와 부담에 짓눌려 있었다.

슬픔도, 두려움도 나눌 사람이 있을 때 드러낼 가치가 있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감정은 스스로를 공격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마비시키는 편이 낫다. 다만 감정은 선별적으로 마비시킬 수는 없다. 슬픔과 두려움의 전원을 내리려면 기쁨과 여유의 전원도 함께 내려야 한다. 고통을 버리려면 즐거움도 버려야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낸 혜민씨는 감정을 드러내지도 남의 감정에 반응을 보이지도 못한다. 삶은 무미건조해지고 감정에 반응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감각도 무뎌지고 살지만 산다는 느낌이 옅어진다.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영혼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혜민씨는 다시 삶의 생기를 찾을 수 있을까? 세월의 더께가 쌓였기에 만만찮은 길이리라. 하지만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란 어려워도 묻어둔 것이라면, 지금은 흔적만 겨우 남아있지만 다시 살려내길 바란다면, 무엇보다 이만큼 힘들게 살아온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선물을 해주고 싶다면 갈 수 있는 길이다. 충분히 가볼 수 있는 길이다. 이제 감정을 느낀다고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슬픔도, 노여움도 있겠지만 희로애락을 느끼는 삶. 그것이 인생이다. 감정을 가진 인간의 삶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