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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기자의 패킹쿠킹](31)"밖에서 놉시다" - 커피를 내리는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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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말만 되면 밖으로 나가려 할까요. 단지 역마살일까요. 먹거리는 물론 옷가지와 여러 캠핑 용품 등을 한짐 가득 싸 짊어야 하고, 게다가 요즘 같은 겨울철엔 평소보다 챙겨야 할 것들이 더 많은데 말이죠. 지독한 더위와 추위의 압박 그리고 생활환경의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자꾸만 자발적 유목민이 되려 하는 걸까요.

그렇게 나와서 무얼 하고 지낼까요. 캠핑장의 어느 오후로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커피원두를 꺼내 그라인더에 넣습니다. 원두 갈리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분쇄된 것으로 준비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느릿해지기로 합니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주전자를 올립니다. 드리퍼에 갈아낸 원두를 담는 것으로도 텐트 안은 커피 향기로 가득합니다. 얇은 물줄기로 천천히 커피를 내립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또르르 잔으로 떨어지는 커피 방울까지 관찰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천천히 공들여 커피를 내리다보니 시간의 흐름에 충실해 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은 부서 단톡방의 알람 소리도, 깜박거리는 모니터도, 주머니 속에서 징징거리는 전화기도 없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호칭에서 스위치를 내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만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멍때리는 시간인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저서에서 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해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커피 맛 그것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죠. 그 풍경.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는 이유를 커피를 마시는 동안의 풍경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사진·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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