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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어긴 ZTE에 1조원 벌금 … 중국 압박 나선 트럼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갈등 커지는 미·중 

트럼프 정부가 7일(현지시간)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ZTE(중싱·中興 통신)에 대해 11억9200만 달러(약 1조37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의 북한·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다.

사드 배치 이어 잇단 힘의 외교 #ZTE, 북한·이란에 통신장비 수출 #안보문제 걸어 통상압력 ‘양수겸장’ #‘미·북 중 택하라’ 시진핑에 메시지

ZTE가 퀄컴과 인텔 등 미국 업체에서 통신 장비를 사들여 이란에 되팔고, 북한에도 283차례나 수출했다는 것이다.

이번 벌금액은 ZTE엔 버거운 규모다. ZTE는 2015년 기준 매출이 1002억 위안(약 16조6600억원)에 달하지만 영업이익이 3억2000만 위안(약 532억원)에 그쳤다. 한 해 영업이익의 26배에 달하는 벌금을 맞은 것이다. ZTE는 이로 인해 지난해 23억 위안(약 3800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벌금액이 커진 데엔 ZTE가 조사를 방해해 괘씸죄가 적용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미 규제 당국과 일개 외국 기업 간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사안을 단면적으로 접근하는 것일 수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시점이다. 미 정부의 벌금 부과는 한국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전격 착수한 이튿날 발표됐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15~19일 일본·한국·중국을 잇따라 방문해 새로운 북한 접근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상황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국이 원하면 북한 문제를 매우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던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압박 카드가 윤곽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천명한 ‘힘의 전략’을 ZTE 제재에서 ‘맛보기’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ZTE를 처벌한 근거는 이란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미국 상무부의 이란거래제재규정(ITSR)과 수출관리규정(EAR)이다. EAR은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에 군사적 용도로도 쓰일 수 있는 기술·부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규정이다. 미국이 이 조항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가장 매를 맞기 쉬운 업체들은 북한 대외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 기업들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ZTE 제재에 중국을 향해 ‘북한의 핵 개발을 막든지, 아니면 미국에서 장사를 접든지’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블랙리스트의 중국 기업들을 조사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華爲)도 그중 하나다. 화웨이는 북한을 비롯해 수출금지대상국에 미국산 스마트폰 부품과 제품 등을 판매했다는 혐의로 미국 당국의 그물망에 걸려 있다.

이런 일련의 조사는 미국이 다음 수순인 ‘세컨더리 제재’를 향해 바짝 다가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컨더리 제재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인권 탄압에 연계돼 있는 북한 기관·업체와 거래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조치다. 국제 금융과 통상의 주무대인 미국 시장에서 밀려나면 해당국의 대외 경제활동은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이 중국 기업·은행에 세컨더리 제재를 발동하면 미·중 관계는 전면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중국은 반발 없이 일단 신중한 반응

중국 정부는 이번 사안에 자극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ZTE가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얽히고설킨 미·중 경제 관계의 복잡한 성격을 감안해 상황 대처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 제재를 반대한다.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우회적인 비판을 내놓았을 뿐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 역할을 하라는 트럼프 정부의 대중 압박은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다. 중국이 앞으로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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