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MLB밀] 연습생 김현수, 메이저리그를 즐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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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김현수 선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1년 전, 같은 곳에서 김현수 선수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1년 전 개막전 야유 받은 일 아직도 못 잊어" #마이너 강등 위기 딛고 3할 타율로 시즌 마쳐 #"절실하기만 했는데 빅리거들은 즐기며 잘하더라"

2017년 김현수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 새러소타 캠프에 왔습니다. 밝게 웃고 동료들과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1년 전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참 힘들었죠. 시범경기에서 부진했던 것, 개막전에서 야유를 받았던 걸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어쩔 수 없이 1년 전 얘기가 나왔습니다. 김현수 선수도 굳이 피하려 하지 않았죠. 볼티모어에 입단해 신나게 훈련하다 시범경기 시작과 함께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23타수 무안타. 아무리 루키였다고 해도 이해 받기 어려울 성적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시범경기였지만 그의 실력을 의심 받았을 겁니다. 구단으로부터 김현수는 마이너리그에 내려가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약서에 명시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활용해 메이저리그에 남았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가 엔트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여론이 좋지 않았죠. 홈구장인 캠든야즈에서 열린 4월 개막전에서 팬들에게 야유를 받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당시 김현수 선수는 “괜찮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지난시즌 메이저리그에 와서 가장 기억이 남는 순간이 그때라고 하는걸 보니 말이죠.

지금 김현수 선수는 내내 웃고 있습니다. 저와 동행한 김선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현수 표정이 정말 좋아 보인다. 두산에서 함께 있을 때 같다”고 말하더군요. 김현수 선수가 1년 상황을 담담히 회상하는 것도,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일 겁니다.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 용기가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만들었겠죠. 김현수 선수는 1년 동안 많이 성장했습니다.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저는 신고선수(연습생)로 프로에 입단했잖아요. 그래서 한 번도 야구가 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늘 어렵고 힘든 대상이었죠. ‘야구를 즐긴다고? 즐기는 게 어딨어? 무조건 이겨야지. 지는 게 어딨어? 무조건 이겨야지’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두산 시절 김현수 선수는 항상 밝은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승부의 순간엔 누구보다 진지한 선수라는 걸 모두가 알죠. 또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하는 선수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1년 만에 달라졌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만난 동료들은 정말 야구를 즐긴다는 걸 봤다고 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겠죠. 치열하게 살아왔던 김현수 선수가 당장 바뀌긴 어렵겠지만 달라지고 싶어한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2017년 김현수 선수의 캠프는 모든 게 다릅니다. 올해 시범경기 첫 안타는 2경기 만에 나왔고, 계속 안타를 때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독이나 동료들이 김현수 선수의 시범경기 성적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다를 겁니다. 김현수 선수는 지난해 빅리그에서 타율 0.302를 기록한 선수입니다.

“김현수는 1번부터 9번까지 어느 타순에서도 잘해내는 선수다. 우리는 김현수 선수와 함께해 정말 기쁘다. 한국 팬들도 김현수 선수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누구의 말일까요?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과의 인터뷰입니다.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에게 미국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며 애정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댄 듀켓 볼티모어 단장은 “우리는 김현수를 좋아한다. 그는 선수들이 특히 좋아하는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수 선수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지난해 9월 29일 토론토전에서 때린 역전투런 홈런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김현수 선수의 홈런이 볼티모어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하겠죠. 김현수 선수의 지난 1년은 정말 드라마틱했습니다. 김현수 선수는 야유로 시작한 4월을 기억하고, 동료들은 멋진 결승홈런으로 마무리한 9월을 기억합니다. 김현수 선수에게 “올해 개막전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올해는 더 잘해야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왼손 투수를 상대해서도 안타를 때릴 수 있어야 하고요. 무엇보다 많은 타석에 나가고 싶어요. 한국 팬들이 매일 아침 제 소식을 들을 수 있게요.”

그의 말대로 김현수 선수의 안타 뉴스로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요.

<플로리다에서 박지영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김현수 스프링캠프 [박지영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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