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얼굴 10%는 잡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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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일 오후 3시 서울 미근동 경찰청 별관 308호실. 10여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두 명이 PC모니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모니터엔 포토숍과 비슷하게 생긴 화상 편집 프로그램 '몽타주 작성 시스템'이 띄워져 있다. 모니터에선 마네킹처럼 생긴 사람의 얼굴 윤곽이 이리저리 변형되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몽타주 작성을 총괄하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몽타주반 사무실이다. 이곳 책임자인 홍범기 경위는 "눈.코.입.뺨.턱 등 모두 10개 부위별로 1만1000개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있다"며 "매년 300건가량의 몽타주가 만들어지고 이 중 10% 정도는 범인 검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77차례에 걸쳐 100여 명의 여성을 연쇄 성폭행한 일명 '발바리' 이모(45)씨가 최근 검거되면서 몽타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검거 전 경찰이 배포한 이씨의 몽타주와 지명수배 사진이 매우 흡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경찰은 4일 천안 20대 여성 연쇄 살인사건 용의자의 몽타주를 전국에 뿌렸다.

발바리의 몽타주는 지난해 봄 충남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피해 여성 세 명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다. 이씨를 검거한 대전 동부서 양승진 경사는 "몽타주가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뾰족한 턱과 날카로운 눈매를 미리 머릿속에 입력시킬 수 있어 검거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목격자나 피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용의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몽타주 제작은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와 각 지방청의 과학수사계에서 맡는다. 본청에는 세 명이, 지방청에는 각 한 명씩 요원이 배치돼 있다.

일선 강력계 형사들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몽타주가 적잖은 역할을 한다"고 얘기한다. 2003년부터 치과 병원 등에서 11건의 강도짓을 저지르고 일곱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던 박모(35)씨는 몽타주 때문에 붙잡혔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간호사의 진술에 따라 만든 몽타주를 주민이 보고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2003년 탤런트 임모씨 납치사건에서도 현장을 목격한 택시기사의 진술로 만들어진 몽타주가 범인 검거에 일등공신이었다.

목격자가 제대로 현장을 기억하지 못하면 최면을 걸어 진술을 유도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충남 서천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살인사건은 유일한 목격자인 중학생 아들이 범인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자 최면을 걸어 몽타주를 그렸다.

그러나 전적으로 목격자 진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정확한 몽타주를 그려내기란 힘든 일이다. 발바리 몽타주를 만들었던 충남경찰청 유인선(여) 경사는 "피해자의 심리가 불안정하고 기억에 한계가 있어 범인 얼굴을 똑같이 재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몽타주는 초상화가 아니라 이미지에 가깝다"고 말했다.

◆ 몽타주(montage)='조립하는 것'이란 뜻의 프랑스어. 목격자나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얼굴 부위를 하나하나 조립해 전체 생김새를 파악한다는 의미다. 현재 몽타주를 수사에 활용하는 기관은 경찰이 유일하다.

98년 '한국형 몽타주' 개발 … 전문인력은 부족

몽타주 기법은 1975년 국내에 도입됐다. 처음엔 특채된 경찰관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렸다. 95년 미국에서 몽타주 작성 프로그램을 들여오면서 전산화된 상태다. 눈.코.입 등의 부위별로 특징적 모습을 고른 뒤 이를 합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자체가 서구인 중심이란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98년 명지대 정보공학과 최창석 교수가 한국형 '몽타주 작성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듬해 경찰이 이를 채택했다.

최 교수는 "서구 중심의 사이즈나 생김새 등을 하나하나 수정해 가는 데 걸리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홍범기 경위는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되면서 더욱 세밀한 몽타주 작성이 가능해지고 있지만 지방청에는 직원 한 명이 몽타주뿐 아니라 지문.족적 감식 등의 업무까지 맡아 전문성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실무자들이 선진 기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 2월 6일자 14면 '몽타주 얼굴 10%는 잡힌다'기사 중 몽타주 작성 시스템을 개발한 명지대 정보공학과 '최창섭'교수는 '최창석'교수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취재기자가 전화통화로 이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석'을 '섭'으로 잘못 들었습니다. 본인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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