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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후보 인신공격, 문자폭탄 … 빗나간 정치인 팬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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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다리 타기도 이해 못하는 인지장애 문재인,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 지난 4일 이재명 성남시장의 팬카페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손가혁)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토론 순서를 정하는 사다리 타기를 잠시 헷갈려한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뒤이은 글에선 ‘치매’ ‘비상식 뇌’ 등의 인신공격적 단어가 줄을 이었다. “문재인이 세월호 사건을 덮어준 혐의가 있다”는 글도 있었다. 이런 비방에 대해 문 전 대표 측은 “허위사실 대책단을 금주 중으로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 정치 참여로 정당정치 보완 #후보 공약 알리는 순기능 있지만 #일부의 과도한 편가르기는 문제 #“인물 위주 아닌 정책 지지 팬클럽을” #“정치인도 과격 지지자 자제 시켜야”

‘노사모’ ‘박사모’를 뿌리로 하는 ‘정치인 팬덤(fandom·팬들의 규합)’이 널리 확산됐다. 잠재적인 대선후보들은 대부분 팬카페가 있다. 문 전 대표의 ‘문팬’, 안희정 충남지사의 ‘아나요’, 이재명 성남시장의 ‘손가혁’ 등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지지자들은 나뉘어 활동하던 여러 팬클럽을 모아 ‘국민희망’이라는 연합체를 꾸리기도 했다. 보수 진영 후보 중에선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유심초’가 인기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자들은 페이스북에 ‘황대만’(황교안 통일 대통령 만들기)이란 페이지를 만들었다. 팬카페 회원들의 주 무대는 온라인이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한다.

이 같은 정치인 팬덤은 지지자들이 후보의 공약을 알리고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를 늘리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이 팽배한 상황에서 열성 지지자들은 건강한 정책 경쟁을 이끄는 촉매가 된다. 후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정당정치를 보완한다”고 말했다.

정치 후원금 모금에도 이들의 역할이 크다. 문 전 대표는 5일 “후원계좌를 연 지 이틀 만에 약 7억원을 모금했다. 96%가 10만원 이하의 개미후원자다”고 밝혔다. 이 성남시장 측도 “사회적 약자가 다수인 후원자들 덕에 지난 3일 정치 후원금이 10억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정치인 팬덤 현상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 싱크탱크가 펴낸 개헌보고서가 편향적”이라고 비판한 뒤 문 전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2000통이 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비방을 넘어 음모론의 생산 주체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팬카페인 ‘박사모’에는 ‘문 전 대표가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에 연루돼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올리자’는 글이 올라왔다. 실제로 검색어 ‘엘시티 문재인’은 검색어 2위까지 기록했다. 문 전 대표 측은 당시에 “근거 없는 비방에는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팬덤이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배타성을 키워 정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본지 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인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가족주의, 집단주의 문화에 기반한 팬덤 문화가 편가르기와 불복 문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팬카페에는 “민주당 경선 결과 문재인이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면 불복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조작됐다”는 글이 게시됐다.

전문가들은 ‘인물 위주’ 팬덤을 ‘정책 위주’ 팬덤으로 교정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오바마 지지자는 ‘오바마케어’를, 트럼프 지지자는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등 정책 위주 지지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이 정당에서 과격화된 지지자들을 자제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재영·여성국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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