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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숨은 빚 23조원 '뇌관'…금융당국 고삐 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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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증권사의 숨은 빚이 23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돼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섰다.

증권사들 숨은 빚 23조원 #메리츠종금, 업계 채무보증 가장 많아 #2분기 중 증권사들 충당금 부담 늘어날 듯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 말 증권사가 보증을 선 채무가 22조9000억원이라고 5일 발표했다. 그 중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부동산 관련이 67%인 15조3000억원에 달했다.

먹거리가 떨어진 증권사들이 최근 몇년 동안 너도나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뛰어든 영향이 컸다. 증권사는 시공사에 직접 PF 대출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공사가 PF 대출을 받을 때 보증을 서는 식으로 수수료 수익을 내 왔다. 시공사가 빚을 갚지 못하면 부담은 고스란히 증권사가 떠안아야 한다.

특히 은행의 기업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증권사가 그 자리를 빠르게 메웠다. 회사별로는 증권사 9곳에 채무보증이 집중됐다. 전체의 62%(14조2000억원)가 몰렸다. 대부분(11조원)이 부동산 관련이었다.

증권사 채무보증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고 판단한 금융감독원은 손실에 대비한 자금인 충당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은행 수준에 맞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충당금 적립 등급 체계는 회수 가능성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은행은 기업 대출을 할 때 최하 등급인 '추정손실'부터 최상 등급인 '정상'까지 비율을 달리 해 충당금을 쌓고 있다. 증권사는 회수율이 비교적 높은 '요주의'나 '정상'에선 충당금을 쌓지 않았지만 이르면 2분기 안에 모든 단계에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증권업계에선 메리츠종금증권의 부동산 채무보증이 4조원 수준으로 가장 많다고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관련 채무보증이 높은데다 관련 사업의 수익 기여도가 높다"고 말했다. 쌓아야 할 충당금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는 불만이다. 최근 3년 동안 채무보증을 실제로 이행하면서 손실을 본 사례는 4건으로, 손실액은 747억원에 불과했다. 또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주로 가격 하락 가능성이 낮은 부동산 사업을 선정해왔다는 항변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50% 이하여서 회수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 PF 채무보증이 63%(5조7000억원)로 가장 많았다.

금융당국이 규제 고삐를 쥔 것은 PF 대출 부실이 원인이 된 저축은행 사태 재발을 막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금리가 인상되고 부동산 업황이 나빠지면 증권사의 채무보증이 가장 큰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며 "갈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지방 부동산에 지급 보증을 선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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