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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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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검찰에 공안사건 전담 부서가 생긴 것은 1961년 4월이다. 대검 중앙수사국 산하에 사찰과와 특무과를 발족하면서다. 5.16 군사쿠데타 직전으로 친북 인사가 주요 수사 대상이었다. "극심한 사회 혼란에 따른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명분 중 하나였다. 73년 대검 공안부로 승격되면서 검찰의 공안사건 수사는 본격화됐다. 전두환 정부 때인 80년대 공안부 조직이 확대됐다. 81년 대검 공안부에 공안자료과가 신설된 데 이어 86년에는 공안기획담당관실과 공안3, 4과(2005년과 98년 각각 폐지)가 새로 만들어졌다. '공안검사'란 용어가 보편화된 것도 이때다. 공안검사들은 대공사건을 비롯해 노동.선거.학원.외사.집단민원 관련 사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공안사건이 법률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 실무상 사무보고와 자료관리 등을 위해 사용되는 개념에 불과하다. 공안사건의 범위에 대한 규정은 검찰보고사무규칙(법무부령 제474호)과 공안사범자료관리규정(대통령 훈령 제45호)에 근거한다. 검찰보고사무규칙(3조2항)은 형법 중 내란 및 외환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군형법 중 반란.이적죄를 비롯해 군사기밀누설죄.암호부정사용죄.군사기밀보호법위반죄 등도 포함했다. 선거사범과 노동관계법 위반 사범, 집단사태와 관련한 폭력죄 등이 공안사건으로 분류된 것은 공안사범자료관리규정(2조2호)에 따른 것이다. 검찰의 공안수사가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여기에 있다. 수사 대상과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공안수사의 기능과 조직을 축소하겠다"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초법적인 발상만은 아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이뤄진 일련의 화해무드는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간 군사적 안보 개념에 치중해 온 우리의 경우 더 그렇다. 그러나 '정전(停戰) 상태'라는 한반도의 모순이 여전히 현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로버트 만델 교수는 "국가 안보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종교를 만들었듯이 국민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안보를 바란다는 것이다. 최근 이뤄진 검찰 간부 인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생각이 복잡하다. 어디에서 심리적 안보를 찾을까.

박재현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