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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고도 학생부 올릴 수 있다” ‘페이크 독서’ 부추기는 학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고2와 중3 두 자녀를 둔 주부 김모(46·서울 개포동)씨는 지난달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으로부터 ‘독서특강’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혹시나 해 전화를 걸자 학원 상담실장은 “학생이 지망하는 학과에 따라 원하는 책을 골라 가르친다”며 “수업마다 요약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책을 살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책 한 권을 2시간이면 끝내고 비용은 권당 5만원이다. 수업 내용만 정리해 학교에 제출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독서 강조하자 #부모가 독후감 숙제 대신 써주기도 #대학 “많이 읽은 척 한다고 도움 안 돼 #면접 때 답 잘 못하면 오히려 감점”

김씨는 “우리 애들은 학생부에 올리려고 며칠 동안 책 읽고 독후감을 써왔는데 어이가 없더라”고 말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학생부의 주요 요소인 독서항목을 채우기 위한 ‘페이크(가짜) 독서’ 시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서울대·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들은 전체 모집인원에서 학종이 60~70%를 차지한다. 또 이들 대학을 포함해 상당수 상위권 대학은 학종에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의 독서활동 사항을 눈여겨본다. 이 때문에 수험생들을 위해 책을 읽지 않아도 요약정보를 제공해 주고 독후감을 대신 써주는 학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독서 특강’ 광고 문자. 이 학원은 “책을 읽지 않아도 학생부에 독서기록을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독서 특강’ 광고 문자. 이 학원은 “책을 읽지 않아도 학생부에 독서기록을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교사들 "인터넷 서평 베낀 듯한 글 많아”

서울 대치동 A학원의 컨설턴트는 “학생이 읽은 책 제목과 소감을 알려주면 독후감을 대신 써주고, 대학 입학사정관의 예상 질문에 답하는 법까지 가르쳐준다”며 “종종 읽지 않은 책의 독후감도 대신 써줄 때가 있다”고 말했다. B논술학원의 원장은 “대입 논술전형이 축소되면서 입지가 좁아진 국어·논술강사를 중심으로 편법 독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됐다”고 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스쿨’의 김현정 대표도 “학종은 내신·수능·교내대회·동아리 등 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시간에 독서량을 늘려주는 사교육은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선 달콤한 제안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독서 기록은 일선 학교에서 일일이 걸러지기 어렵다. 서울 강남의 한 일반고 교사는 “학생 수준에서 읽었다고 믿기 힘든 어려운 책이나 인터넷에서 베낀 것처럼 보이는 글을 발견할 때도 많다”며 “학생을 불러 내용을 캐묻기도 하지만 워낙 확인할 게 많으니 그냥 반영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또 “학부모가 자녀 대신 온라인 서점에 나온 서평을 줄이는 식으로 독후감을 써내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학 입학사정관과 고교 진학교사들은 이런 ‘페이크 독서’가 실제 입시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대학은 학생부에 단지 많은 책 목록이 적혀 있다고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내신성적이나 수업·동아리 활동과 동떨어진 독서기록은 사정관의 의심을 사기 쉽다”고 지적했다.

또 자칫 읽지 않은 책을 읽은 것처럼 적어놓았다가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면접에 들어가면 학생부·자소서의 독서활동을 살펴 질문을 이어가는데, 이해도가 낮거나 자신감이 없이 답하는 학생은 대부분 탈락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영준 보성고 진학부장은 “평소 학교 수업의 수행평가·발표 준비를 하면서 관련된 책들을 찾아 충실히 읽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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